“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TV 화면 속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육성이 거실을 메웠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 멍하니 뉴스를 바라보다가 곧장 선배 김지호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지금 뉴스 보셨어요?”
“당장 국회로 가자.”
부장은 이미 선임 두 명이 국회 정문과 본회의장을 맡고 있다며 추가 투입을 만류했다. 사태가 길어질지 모르는 만큼 취재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회사에서 카메라를 챙겨 국회로 향했다.
차를 몰고 국회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정문 주변은 통제선과 인파가 뒤엉켜 있었다. 계엄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고, 군인과 경찰은 각 출입구를 지키며 국회 진입을 막고 있었다. 피켓을 든 시민들은 구호를 외치며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몸으로 부딪혔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러 인사가 담장을 넘어 들어갔던 것처럼, 김지호 기자 역시 카메라와 함께 담장을 타고 국회 안으로 넘어갔다. 주차할 곳을 찾으러 이동하던 중 부장 전화를 받았다. “장갑차가 용산 대통령실로 갈 수도 있다.” 돌발 상황을 예상해 동료들을 믿고 핸들을 돌려 용산으로 향했다. 용산 일대는 국회와 다른 분위기였다. 인근 도로에 군과 경찰이 배치돼 있긴 했지만, 장갑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통령실 앞 도로에는 통제선과 경비 인력만 남았고 계엄 선포 직후 특유의 정적만 흘렀다.
그날 밤의 긴장을 가장 응축한 장면은 결국 김지호 기자의 카메라에서 나왔다. 대다수 기자는 가까이 붙어 일촉즉발의 상황을 좇았다면, 이 사진은 국회 본청 아래 계엄군과 시민을 한 프레임 안에 포개어 담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밀려났다가 어디서 다시 버티고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장면이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서울의 밤’ 사진은 2024년 12월 5일 자 신문 1면과 온라인 메인에 걸렸고, 이후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한국기자상 사진 부문과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비상계엄은 그날 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과 대통령의 해제 발표로 약 6시간 만에 공식 종료됐다. 그러나 그 사건은 이후의 한국 정치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국회는 계엄 선포를 헌정 질서 훼손으로 규정하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직무는 정지됐다.
이어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계엄 선포가 헌법이 정한 절차와 한계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계엄 결정에 관여했던 국무총리·장관·군과 경찰·검찰 수뇌부 상당수가 내란 관련 혐의로 줄줄이 수사와 재판대에 섰다.
한때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겠다”고 외치며 계엄을 선포했던 전 정권은, 1년 뒤 헌정을 흔든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앞에 서게 됐다. 보수 진영 안팎에서는 이미 ‘폐족’이라는 표현까지 쓰이고 있다. 계엄의 명분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그 자리로 밀어 넣은 셈이다.
정치 지형도 바뀌었다. 윤 전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었던 국민의힘은 계엄 동조 세력이라는 낙인을 벗지 못한 채 분열과 탈당을 거듭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계엄에 동조한 정당은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며, 헌정사에서 보기 힘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 계엄군이 진입한 장면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야 할 보수 진영에 뼈아픈 장면으로 남았다. 진보 진영은 ‘민주주의 사수’를 자축하며 계엄 1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반면, 보수 진영은 사과와 책임 공방 속에서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날 밤 계엄의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