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유엔 참전 용사 국제 추모의 날을 맞아 6·25전쟁에 참전한 용사와 유가족 등 80여 명이 방한했다.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은 유가족이 전사자 명비에서 고인의 이름을 탁본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이른 시간인데도 전사자 명비 주변으로 조용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유엔 참전 용사 국제 추모의 날(11일)을 앞두고 미국·영국·콜롬비아·튀르키예·벨기에 등 14국에서 온 참전 용사와 유가족 80명이 한국을 찾아 첫 일정을 소화하는 자리였다. 생존 참전 용사 13명, 전사·실종 장병 유족 26명, 참전 용사 유가족 41명. 전사자 명비에 빼곡히 적힌 이름들에서 세월과 희생의 두께가 느껴졌다.

추모비 앞에서 동선을 가늠하던 순간, 국가보훈부 전속 사진가 한 명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수년 동안 국가 행사를 찍어왔지만… 저는 이 일정을 동행할 때 가장 감명 깊습니다.”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다. 이 일정은 사진기자 입장에서 난이도가 높은 취재라는 걸 알고 왔기 때문이다. 보통 행사는 동선과 하이라이트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전사자 명비를 찾는 참전 용사 유가족들은 추모비 앞에 도착하는 순간, 각자의 이름을 향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도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들의 감정을 방해하면 안되는 부담이 있다.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들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서 고인의 이름을 촬영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잠시 후, 참전 용사와 유가족을 태운 버스가 기념관 앞에 멈춰 섰다. 먼 세월을 돌아 이곳에 다시 선 얼굴들에는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운 표정이 서려 있었다. 이들은 보훈부 관계자들이 미리 표시해 둔 자국 국기 아래 전사자 명비에서 동료와 조상의 이름을 찾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를 명비에 대고 연필로 꾹꾹 눌러 탁본을 뜨는 순간마다 다양한 감정이 드러났다. 이름을 확인하고 반가움에 웃으며 사진을 찍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손등으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고령의 참전 용사는 전우에게 헌화하며 경례했다.

20분 남짓. 그 짧은 시간 동안 추모비 곳곳에서 각자의 드라마가 동시에 펼쳐졌다. 현장의 기자들은 말 대신 눈빛을 주고받았다. 유가족의 흐름을 막지 않으려고 한 발짝 물러서서 찍고, 옆으로 돌아가 구도를 잡았다.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해치지 않고 싶은 마음과, 그 가운데서도 지면에 실릴 사진을 어떻게든 남겨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했다.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가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서 헌화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서 이름을 탁본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고운호 기자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들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서 고인의 이름을 찾고있다. / 고운호 기자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헌화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서 고인의 이름을 탁본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추모를 마친 유가족들은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기념관 내부로 이동했다. 행사 시작 전 짧은 대화를 나눈 국가보훈부 전속 사진가의 시간이었다. 그는 “여기를 봐주십시오!”라고 외치며 참전 용사와 유가족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대열을 정비하고 현수막을 반듯하게 세운 뒤, 모두가 프레임 안에 들어왔는지 재차 확인했다.

“우리 코리안 하트 한번 해볼까요?”

유엔참전용사 추모의 날을 맞아 방한 중인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들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그 말이 떨어지자 엄지와 검지를 모은 손하트가 줄지어 올라갔다. 참전 용사와 유가족, 이들의 여정을 돕는 직원들까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숙연했던 전쟁기념관 내부에 부드러운 공기가 흘렀다. 같은 행사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록에 임하느냐에 따라 현장의 온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나서며 동료 사진기자가 말했다. “참 대단하고 고마운 분들이야.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목숨 걸고 자유를 위해 싸워 주셨잖아. 이 행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우리가 이렇게 그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해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이겠지.”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싸운 참전 용사들. 6.25 전쟁에서 누군가는 부모를 잃었고,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의 후손이 대한민국을 찾아와 조상의 이름 한 칸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희미한 기억을 선명한 기록으로 남기는 아주 작은 역할를 맡아 그들 곁에서 취재할 수 있는 현실이 감사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당신의 희생으로, 오늘 저는 당신을 기리는 동료와 후손을 담습니다.

6·25전쟁 유엔 참전국의 참전용사 유가족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종이를 대고 색연필로 고인의 이름을 탁본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