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충북 괴산군 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노랗게 물든 가을 숲 사이로 초록 잎이 더디게 물들어 있다. / 고운호 기자

“SNS 보고 왔는데… 많이 다르네요."

이미지 중심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단풍명소’를 검색하면 알록달록한 단풍 사진들이 쏟아진다. 진한 노랑과 짙은 빨강의 향연. 가을의 절정이 따로 없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실상은 사진과 딴판이다. 몇몇 사진가들이 상상 속의 가을을 지나친 후보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기를 얻기 위해 색조를 바꾸고 채도를 과도하게 높였다.

2일 오후 충북 괴산군 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올해는 기온이 높고 일교차가 작아 은행잎이 늦게 물들었다. / 고운호 기자

충북 괴산군 양곡저수지. 매년 이맘때면 노란 물결로 일렁이던 은행나무길은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주말 열린 ‘양곡은행나무길 축제’ 현장은 중간중간 연둣빛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관광객들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찾아 기념사진을 남겼다.

3일 충북 보은 속리산 문장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전경. 11월 초 임에도 불구하고 산하가 탁한 녹색에 가까운 모습이다. / 고운호 기자

충북 보은 속리산과 구불구불한 길로 유명한 말티재도 사정은 비슷했다. 10월 말이면 붉은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던 속리산 등산로는 연갈색에 가까웠다. “예전 같으면 산 전체가 물들었을 텐데 올해는 절반도 안 된 것 같아요” 등산객의 발걸음이 매출과 직결되는 상인의 말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3일 오후 충북 보은군 말티재길. 단풍은 드물고 초록색에 가깝다. / 고운호 기자

전문가들은 “가을의 리듬이 깨졌다”고 진단한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김동학 임업연구사는 “단풍이 들려면 일교차가 중요합니다. 차가운 공기가 엽록소를 분해하고, 안토시아닌을 생성해 잎에 색을 입히죠. 그런데 올여름은 전국 평균 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더위가 지속된 기간도 유난히 길었습니다.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이 짧아지면서 엽록소 분해가 늦어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10월 기후 통계를 발표하며 지난달 전국 평균 기온이 16.6℃로 평년보다 2.3도 높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길어진 여름에 가을 장마까지 겹쳤다. 국립수목원 자료를 보면 단풍 절정 시기는 최근 10년 사이 해마다 평균 0.4일씩 늦어지고 있다.

단풍 은행 절정 예측지도. 대부분 10월 말을 절정으로 예측하고 있다. / 산림청

계절의 변화에 맞춰 축제를 준비해온 지자체들은 축제 날짜를 미루거나 취소했다. 축제 관계자는 “시기를 늦추면 추워서 관광객이 안 오고, 당기면 단풍이 물들지 않아 난감하다”며 “축제 날짜를 예측해 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후가 지속되면 가을 풍경 자체가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잦은 비, 불규칙한 온도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풍 나무의 색소 생성이 방해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던 가을의 색은 소셜미디어 사진 속에나 있을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계절색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사진기자의 고민도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