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23. 김용호의 ‘난폭한 아름다움’ 사진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힘겨운 삶을 살아가던 호랑이가 방황 끝에 경복궁으로 향한다는 스토리 사진의 하나. 호랑이는 한국 남성의 상징이다. 2022년./ 사진가 김용호

지난주 경주 APEC 회의를 앞두고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금관을 선물받고 크게 기뻐했다. 모형이었지만 금관의 화려함에 놀랐을 것이다. 신라의 금관을 세계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황금 제국이라는 라틴 아메리카 어느 나라도 이렇게 크고 화려한 금관이 있었나 싶다. 최근 전 세계 인기를 얻는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까치와 호랑이 더피 캐릭터 덕분에 우리 민화도 새롭게 알려질 것 같다. 우리 문화유산이 세계에 알려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쥐의해를 앞두고 달력에 들어갈 사진을 사진가는 이렇게 이야기로 구성해서 찍었다. 한국으로 여행 온 미키는 경복궁에 가서야 한국적인 풍경을 만난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궁궐의 창살, 단정한 기와를 얹은 돌담, 뒷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후원 그리고 한복을 입은 사람들. 그곳에서 미키는 자신을 찾게 된다. 김용호 시퀀스 포토의 시작이 된 시리즈다. 1996년./ 사진가 김용호

사진가 김용호가 30년 전 미키마우스 가면을 쓴 모델을 데리고 경복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비슷한 의미였다.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미키마우스도 오히려 서울의 고궁을 보며 한국 전통 문화에 감탄한다는 설정이었다. 당시 쥐의 해 달력에 들어갈 사진을 김용호는 이렇게 찍었다. 패션, 인물, 예술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진을 찍어온 사진가 김용호의 작업들을 모은 전시회가 4일부터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에 있는 캐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용호는 현대 카드 광고 사진을 이렇게 뒤죽박죽의 사물(오브제)로 직접 배치했다. 굴은 남성성, 로봇 장난감은 일상에 매몰된 현대인, 물고기와 굴, 진주 등은 욕망을 상징한다. 이 광고사진 연작은 뛰어난 작품성으로 상업화랑에서 전시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2012년/ 사진가 김용호

‘난폭한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는 사진뿐 아니라 소설을 사진으로 구성한 영상들까지 총 70여 점이 전시된다. 사진가에게 왜 아름다움 앞에 ‘난폭한’이라는 단어가 붙는지 물었다. 그는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 한 장의 제목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언젠가 도심의 한 공원에서 우연히 발견한 눈 내린 바위 모습이 무서운 짐승처럼 보였다고 했다. 김 씨는 길들여지지 않은 괴물처럼 생긴 바위의 모습이 항상 낯설고 새로운 미학을 찾아온 자신의 작업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하얀 눈에 덮혀 정체를 알 수 없는 흉폭한 괴물체가 머리를 내고 있는 듯 평화롭게 보이는 도시속 공원 속에서 잠재된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꼈다고 했다. 난폭한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을 가졌다. 2014년./ 사진가 김용호

기자는 3년 전인 2022년 여름 김용호의 사무실을 찾아가 직접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하려면 ‘새로움과 미스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에 궁금함을 만들어야 보는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는다는 말이다. 그가 찍은 사진 가운데 호랑이 가면을 쓴 양복 차림의 남자가 경복궁을 가거나, 토끼 가면을 쓴 인물이 사라질 남산 힐튼 호텔을 가는 설정들이 모두 여기서 비롯되었다. 보는 사람이 상식으로 넘겨버리는 아름다움엔 새로움이 없기 때문에 ‘이건 뭐지?’라는 미스터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 ‘사진가 김용호의 창조적 발상’(2022년 7월 13일 기사)

https://www.chosun.com/video_photo/2022/07/13/WM5BGPO2VRCMHFPXE3WHSGAXEQ/

남산 힐튼호텔이 해체되기전 인수된 회사로 부터 의뢰를 받아 작업한 스토리 사진.힐튼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을 토끼의 형상을 주인공으로 했다. 2023년/ 사진가 김용호
‘현대카드 레드를 사용하면 모험과 판타지가 가득한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김용호가 공항에서 만난 토끼소녀와 빨간 봉투에 대한 이야기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프를 얻어 플롯을 구성했다,. 2011년./ 사진가 김용호

지난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장자를 읽으라고 조언한 김용호에게 생성형 AI 시대에 앞으로 사진이 어떻게 될지 질문했다. 그는 “사진의 고유한 힘은 존재했던 세계의 흔적, 현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아무리 정교해도 그때 그 순간, 그 사람, 그 빛의 우연성을 복제할 수 없다. 예술 사진도 기술보다 사진가의 내면과 철학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가 정교한 이미지를 무한히 뽑아낼수록, ‘불완전하지만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은 오히려 더 강하게 반응할 것이다. 광고나 상업 사진 영역도 AI 이미지의 남용으로 피로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들은 이미 가짜의 정교함에 익숙해졌고, 다음은 진짜 인간의 서사를 찾게 될 것이다. 사진은 인간이 세상과 직접 마주한 흔적이기 때문에 예술과 광고에도 ‘진짜와의 접촉을 증명하는 매체’로서 더 깊은 의미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가 끝난 후 폐기물이 되어가는 꽃과 식물을 촬영했다. 꽃은 가지를 잘라내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화려하게 피어났다. 생명력이 넘치던 꽃의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았고, 쓰레기통 옆에서 폐기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니타스의 김용호식 사진적 표현이다. 2021년/ 사진가 김용호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이 당시 경성의 미츠고시 백화점 옥상을 올라가는 모습을 스토리로 재현했다. 2013년./ 사진가 김용호

젊은 시절 국내 한 여성복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다가 광고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해서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한 김용호는 그래서인지 남들을 따라 찍지 않았다. 정형화된 사진보다 스스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가며 장르에 구분 없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주로 패션, 인물 같은 상업 사진가로 활동했던 사진가는 식물이나 정물, 순수 예술 사진 외에도 영상과 설치 미술, 소설까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진행된다.

C컷/ 사진가 김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