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23. 김용호의 ‘난폭한 아름다움’ 사진전
지난주 경주 APEC 회의를 앞두고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금관을 선물받고 크게 기뻐했다. 모형이었지만 금관의 화려함에 놀랐을 것이다. 신라의 금관을 세계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황금 제국이라는 라틴 아메리카 어느 나라도 이렇게 크고 화려한 금관이 있었나 싶다. 최근 전 세계 인기를 얻는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까치와 호랑이 더피 캐릭터 덕분에 우리 민화도 새롭게 알려질 것 같다. 우리 문화유산이 세계에 알려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사진가 김용호가 30년 전 미키마우스 가면을 쓴 모델을 데리고 경복궁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비슷한 의미였다.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미키마우스도 오히려 서울의 고궁을 보며 한국 전통 문화에 감탄한다는 설정이었다. 당시 쥐의 해 달력에 들어갈 사진을 김용호는 이렇게 찍었다. 패션, 인물, 예술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진을 찍어온 사진가 김용호의 작업들을 모은 전시회가 4일부터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에 있는 캐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난폭한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는 사진뿐 아니라 소설을 사진으로 구성한 영상들까지 총 70여 점이 전시된다. 사진가에게 왜 아름다움 앞에 ‘난폭한’이라는 단어가 붙는지 물었다. 그는 이번에 전시하는 사진 한 장의 제목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언젠가 도심의 한 공원에서 우연히 발견한 눈 내린 바위 모습이 무서운 짐승처럼 보였다고 했다. 김 씨는 길들여지지 않은 괴물처럼 생긴 바위의 모습이 항상 낯설고 새로운 미학을 찾아온 자신의 작업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기자는 3년 전인 2022년 여름 김용호의 사무실을 찾아가 직접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인터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하려면 ‘새로움과 미스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에 궁금함을 만들어야 보는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는다는 말이다. 그가 찍은 사진 가운데 호랑이 가면을 쓴 양복 차림의 남자가 경복궁을 가거나, 토끼 가면을 쓴 인물이 사라질 남산 힐튼 호텔을 가는 설정들이 모두 여기서 비롯되었다. 보는 사람이 상식으로 넘겨버리는 아름다움엔 새로움이 없기 때문에 ‘이건 뭐지?’라는 미스터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 ‘사진가 김용호의 창조적 발상’(2022년 7월 13일 기사)
https://www.chosun.com/video_photo/2022/07/13/WM5BGPO2VRCMHFPXE3WHSGAXEQ/
지난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장자를 읽으라고 조언한 김용호에게 생성형 AI 시대에 앞으로 사진이 어떻게 될지 질문했다. 그는 “사진의 고유한 힘은 존재했던 세계의 흔적, 현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아무리 정교해도 그때 그 순간, 그 사람, 그 빛의 우연성을 복제할 수 없다. 예술 사진도 기술보다 사진가의 내면과 철학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가 정교한 이미지를 무한히 뽑아낼수록, ‘불완전하지만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은 오히려 더 강하게 반응할 것이다. 광고나 상업 사진 영역도 AI 이미지의 남용으로 피로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들은 이미 가짜의 정교함에 익숙해졌고, 다음은 진짜 인간의 서사를 찾게 될 것이다. 사진은 인간이 세상과 직접 마주한 흔적이기 때문에 예술과 광고에도 ‘진짜와의 접촉을 증명하는 매체’로서 더 깊은 의미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 국내 한 여성복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다가 광고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해서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한 김용호는 그래서인지 남들을 따라 찍지 않았다. 정형화된 사진보다 스스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가며 장르에 구분 없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주로 패션, 인물 같은 상업 사진가로 활동했던 사진가는 식물이나 정물, 순수 예술 사진 외에도 영상과 설치 미술, 소설까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