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7일 이탈리아 돌로미티 세체다(2,518m). 하루 종일 산을 덮던 안개가 걷히자 돌과 초원, 빛이 맞물린 절벽이 드러났다. / 고운호 기자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에 세체다(Seceda)라 불리는 절벽이 있다.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서 차로 350㎞, 꼬박 네 시간을 달려야 닿는 알프스 산맥이다. 오르티세이(Ortisei) 마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2500m 지점에 오르면 ‘악마가 사랑한 풍경’이라 불리는 세체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극적인 바위 봉우리와 절벽, 평화로운 초원의 대비로 붙은 별명이다.

칼로 산을 쪼갠 듯 직각으로 솟은 절벽은 초원을 삼킬 듯 웅장하다. 초여름엔 짙은 녹색 초원이 능선을 덮지만 10월의 세체다는 이미 계절의 경계에 있다. 눈과 바람, 햇살이 교차하며 산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현지인들은 “세체다는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고 없이 비와 우박이 쏟아지고, 짙은 안개가 산을 감싸면 하루 종일 모습을 감춘다. 자연의 변덕 앞에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 얼굴을 드러내길 기다린다.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능선을 비출 때 세체다는 돌과 초원, 하늘이 맞물린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변한다.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여행자가 동시에 숨을 멈춘다. 카메라로 웬만한 풍경은 담을 수 있다지만, 세체다는 ‘직관’으로 완성된다. 그 한 장면을 보기 위해 이어온 긴 여정의 노고가 눈 녹듯 사라진다.

관광객들이 세체다를 방문하기 위해 케이블카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여름이면 하이커들로 붐비던 세체다의 능선은 가을 이후 비수기를 맞아 평온을 되찾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능선 아래로 이어진 가느다란 길을 걸으며 깨닫는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고, 또 덧없는 존재인지. 도시에서 쌓인 복잡한 마음들이 먼지처럼 흩어진다.

세체다 인근 산장 놀이터에서 어린이가 그물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