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아이돌 그룹 라이즈(RIIZE)가 경호원에 둘러싸여 출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과 홈마들이 사설경호업체가 만든 인간띠 뒤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남강호 기자

“거기! 뒤로 가!”, “사진 찍지 마!”

지난 6일 오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한 무리의 인파가 달려왔고, 자연스럽게 줄을 맞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고성과 반말이 난무한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지나는 사람들을 통제한다. 사설업체 경호원. 기자가 초년병이던 시절, 연예인들 취재하느라 경호원들과 몸싸움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온갖 인상을 써가며 사진기자, 방송카메라 기자, 팬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경호라는 이름으로 밀쳐대던 사람들.

1990년대 후반 H.O.T., 보아, 젝스키스, 신화, S.E.S. 등이 등장하면서 아시아권(특히 중국, 일본, 대만)에서 인기를 얻으며 시작된 ‘K팝’,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크게 성공해 한류 열풍이 ‘문화 수출’로서 처음 부각된 ‘K드라마’, 2003년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K무비’. 지난 30여 년 K팝, K드라마, K무비가 세계를 휩쓸며 대한민국의 ‘K컬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세계적인 아이돌 팬덤을 구축하며 대한민국 엔터계는 무한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 팬들에 대한 막무가내식 대응은 아쉬움이 남는다.

빅뱅(BIGBANG) 지드래곤이 ‘샤넬 2022/23 크루즈 쇼' 참석을 위해 지난 2022년 5월 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스1

지난 몇 년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는 아이돌이나 배우 등 연예인 출국 과정에서 반복적인 사고가 발생해왔다. 2017년엔 워너원 매니저가 팬을 밀치며 유아 동반 승객까지 접촉했고, 2018년엔 NCT 127의 경호원이 기자를 폭행해 소속사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2022년에는 엔하이픈의 경호원이 팬을 거칠게 밀치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됐고, 2023년엔 NCT DREAM 팬이 경호원에게 밀려 늑골 골절상을 입는 사건도 벌어졌다. 지난해 7월 배우 변우석의 경호원이 인천공항에서 일반 승객들에게 플래시를 비추고 탑승권을 검사하는 등 과잉 경호를 펼쳐 논란이 일었고, 인천공항공사는 해당 사설 경호업체를 고소했다. 그러면서 인천공항 측은 혼잡 방지를 위해 연예인 등 유명인 전용 출입문 사용을 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6일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와 팬들이 해외로 출국하는 아이돌 그룹의 모습을 찍으려고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앞에 모여 있다. /남강호 기자

아이돌 등 스타들의 공항 패션 영상과 사진은 뉴스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며 공항 출국길 자체가 브랜딩의 일부가 됐으며, 그 브랜드의 가치 상승을 이끌다 보니 연예기획사나 광고주 등을 통해 스타는 하나의 광고판이 되었다. 이러한 ‘공항 패션 마케팅’이 스타들의 팬덤 열기와 맞물려 점차 통제 불능인 상태가 된 것이다. 팬들의 무질서함만을 탓할 수도 없다. 팬으로 위장한 ‘홈마’들이 팬과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고가의 장비로 촬영한 이미지를 되팔거나 굿즈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다 보니 연예기획사 측은 사설 업체나 경호원을 써서라도 이들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된다. 과잉 경호로 팬이 다쳐도, 홈마와 기자가 경호원들과 충돌해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피해는 일반 출국객에게 돌아간다.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통행이 막혀 수속이 지연되고, 압사 등 안전사고로 이어질 뻔한 장면이 반복된다.

일본의 경우 연예인의 항공편 정보를 비공개하고, 공항 내 팬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운영해 질서를 유도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은 연예인 출입구를 별도로 운영하고, 사설 경호에 대한 규제를 병행한다.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아이돌 그룹 라이즈(RIIZE)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출국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스타들의 얼굴 한 번, 손짓 한 번 더 보려고 모여드는 팬들이나 연예기획사 측이나 공항 측 모두 일반인이 봤을 때 똑같이 문제가 된다. 정말이지 ‘전쟁이 났나?’ 싶을 정도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팬들을 보며 문화 선진국은커녕 아직도 후진국 수준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K컬처가 세계적인 문화가 되어버린 지금 팬들도, 취재진도 경호원도, 기획사 측도, 공항 측도 한발씩 물러서서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는 일반 탑승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찾은 관광객도 무수히 많음을 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안전과 질서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