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19. 오승환 사진가의 ‘AI 사진론’

북극해 빙산 위에서 곰 한마리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인공지능(AI)으로 영상을 만드는 시대다. 챗GPT가 나온 이후 경쟁적으로 수많은 생성 AI 도구들이 쏟아지고, 초기에 AI가 제작하던 어설픈 이미지도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졌다. AI 기술 발전의 속도는 무섭다. 그렇지만 AI가 진짜 사진을 대신할까? 가짜 이미지들이 판치면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두려움이 남는다. 그렇게 모두들 주저하고 있을 때 AI 이미지를 과감히 사진의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진가가 있다.

학부와 대학원까지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기자를 거쳐, 24년간 대학의 사진학과 교수였던 오승환 사진가는 최근 AI 사진에 관한 책을 내고 전시회까지 열고 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는 사진가가 미드저니로 지난 3년간 생성한 AI 이미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AI 사진 책이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 출판사(눈빛)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AI가 대세가 되어가는 건지 그럼 그동안 찍던 사진은 뭐가 되는지 등을 묻기 위해 전시장을 찾아갔다.

미국 유타주 사막 협곡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굽어진 도로 위로 차량 한 대가 달리고 있다. AI 생성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벽에는 카메라로 찍은 진짜 사진 같은 이미지들이 걸려 있었다. 꼼꼼히 보면 아닌 것도 같았다. 액자 옆에는 에디션(작품 숫자)과 가격표까지 붙어 있었다. 작업에 대한 노고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프롬프트를 이렇게 쓰면 이런 AI 이미지가 나온다고 적힌 설명도 있었다. 전시장을 찾아 사진가에게 몇 가지 물어보았다. 다음은 오승환 사진가가 말하는 AI 사진론이다.

-사진은 끝났나?

미안하지만 우리가 알던 사진은 끝났다. 사진에 모든 것을 담겠다고 여기던 시대도 지나갔다. ‘포스트(post) 포토그래피’라는 말이 세계 미술계에 나온 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럼 사진 다음은 뭘까? 카메라로 사진을 안 만든다는 거다. 이제 AI로 주문하면 사진은 나온다. AI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수만 년 전 인류가 그렸던 동굴 벽화랑 비슷하다. 생각을 시각화하는 몸부림이다. 착각하지 말자. 사진은 본디 눈에 보이는 걸 찍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림처럼 시각화하는 거였다. 붓으로 그리던 걸 카메라로 찍었을 뿐이다.

비가 오는 날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을 한 여성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고 있다. AI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배신감이 생긴다면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사진도 보이는 걸 다 찍을 수 없다. 모든 사진은 프레임을 정해야 한다. 그걸 카메라로 찍는다고 했다. 초점을 맞추거나 파인더 안에서 어디를 넣고 빼는지를 생각해보면 사진가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보인다고 전부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시각화할 건지를 정하고 찍는다. 셔터를 누를 때 구도와 조명이 결정되어 나오는 결과물이 사진이었다.

이제 사진의 정의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 사진(寫眞)에 참 ‘진(眞)’이 들어가서인지 우리는 사진을 진실 규명의 도구로 강조해왔다. 사진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 카메라를 창조한 서구에선 사진을 ‘빛(photo)으로 그린 그림(graphy)’이라 부르고 사진 촬영을 “테이크 어 픽처(Take a picture)”라며 사진을 그림으로 생각했다.

필리핀 세부 인근 해변의 대나무 뗏목 위에서 여행자가 물속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자연과 교감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카메라는 이제 필요가 없나?

그렇진 않다. 실사 같은 묘사 기능을 AI가 제작하는 것이지 사진의 고유한 기능은 계속될 것이다. 그건 가장 기본적인 카메라의 기능, 바로 순간 포착이다. 포착은 카메라가 아니라 오직 사람이 정한다. 아무리 똑똑해도 AI는 기계다. 기계는 사람의 표정이나 분위기, 숨은 뜻 같은 맥락(context)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 AI는 콘텐츠는 만들지만 콘텍스트(context, 맥락)는 못 만든다. 겉은 아는데 그 안에 가진 감정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누군가의 초상 사진을 찍을 때 그 사람의 인상이나 느낌, 말하는 의미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진가다. 눈에 보이는 걸 찍는 게 아니라 사람의 내면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일은 인간이 계속할 수 있다. CCTV로 찍을 것인가 사람이 말을 하면서 찍을 것인가의 차이와도 같다. 둘 다 이미지인데 어떤 게 진짜 사람의 모습일까, 기계인 CCTV 기록은 사진이 아니란 말이다. 앵글을 달리하면서 프레임을 정하고 자기 관점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일은 자동 카메라(CCTV)가 아니라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의 일이다. 풍경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재현하는 일에 사진가들은 더 열중할 수밖에 없다.

AI 시대에 카메라는 존재의 증명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더 가치 있게 할 수 있다. 특정 시간과 장소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건 사진이었다. 관찰하고 기록해오던 사진의 기능은 계속 유지된다. 사진은 빛과 공기, 촉각 같은 경험적 가치가 사진에 표현된다. AI는 영상 데이터를 긁어모아 찰흙으로 빚듯이 만드는 것이다. 경험한 상상 안에서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주문하는 AI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풍경이 있을지 모를 세상을 찍는 사진과는 근본이 다르다.

프랑스 몽생미쉘 앞 해변에서 한 무리의 양떼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가는 40년 전에 찍은 몽상미쉘 사진을 AI로 양 떼를 생성해서 이미지를 만들었다. / 사진가 오승환

-AI 사진은 디지털 보정의 끝판왕

전시장 벽에 걸린 프랑스 몽셸미셸 앞 양 떼들은 내가 40년 전에 가서 찍은 사진을 넣고 AI로 돌려 생성한 것이다. 저 바다 한가운데 있던 성을 찍었는데 양 떼가 지나가는 모습은 그림엽서에서 보고 세월이 흘러 꼭 다시 가서 찍고 싶었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앞을 지나는 양 떼를 AI에게 만들어 달라 했더니 40분 만에 원하는 그림이 나왔다.

30여 년 전 포토샵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우리나라 사진가들은 포토샵을 천시했다. 그림 같은 사진을 찍으면 “에이 너 포토샵 했지? 너 손댔지? 너 조작했지?”라고 비웃으며 속으로 이건 사진이 아니라고 했다. 포토저널리즘 연구에도 필름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왔을 때 사진가들은 이걸 어떻게 지켜야 되나 모두가 걱정했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 이전에도 조작하고 사진을 찢어 붙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다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수월해진 거였다. 그런데 기술이 가짜를 만든 건 아니었다. AI는 디지털 시대에 하던 걱정을 확장한다. AI라고 해서 갑자기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더 쉽게 될 뿐, 속이는 건 사람이지 기술이 아니다.

프롬프트에 '제주 바닷길을 따라 산책하는 여성, 넓은 바다 풍경과 파도 소리,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DSLR품질' 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 평범해 보이는 이미지는 뒤로 보이는 나무나 전봇대가 없는 깨끗한 길 가와 여성이 메고 있는 카메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아 수 백번의 시도 끝에 완성했다고 한다. AI 생성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AI 사진을 만들면 대부분 말끔하고 산뜻한 얼굴이 생성되는데 같은 톤의 피부나 조명이 나오는 건 현재 가져오는 데이터가 광고 사진이 많기 때문이다. 광고 사진은 대부분 포토샵 보정이 강하다. AI 이미지의 데이터는 파일 크기가 작은 것들보다 큰 것들에서 입력된다. 또 데이터가 많으면 더 정교한 이미지가 생성되는데, AI 생성 사진 중 젊은 백인이 많이 나오는 편향성이 있다. 이걸 ‘데이터 편향’이라고 부르는 데 한국에서 집이라고만 하면 한옥이 나오고, 한국인의 옷이라면 한복 입은 사람만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땐 프롬프트를 수정하면서 원하는 이미지로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남태평양 통가 해역에서 한 여성 다이버가 수면 아래에서 새끼 혹등고래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쉬워 보여도 밤새는 중노동이 AI 사진

머릿속에 그림이 안 그려지면 AI 사진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만든다. 아이가 바닷가를 뛰어가고 있다고 치자. 뛰어가고 있다면 머릿속에 그림은 그려지지만 너무 막연하다. 아이의 옷은 반바지인지 긴 바지인지 파란 청바지인지, 팔은 어떻게 움직이고 얼굴은 표정은 어떤지, 아이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나이는 등등. 이렇게 세부 묘사를 더해야 조금씩 상상에 근접한 사진이 나온다.

내가 쓰는 프롬프트는 기본적으로 엄청 길다. 예뻐하는 애완견을 예로 들어보자. 애완견의 나이와 견종 같은 것은 기본이고 세세하게 알려줘야 AI가 생성한다. 거기에 사진은 사실적인 느낌이 중요해서 카메라 기종과 렌즈, 필름의 종류, 촬영 시간, 전경인지 클로즈업인지 앵글(드론 포함)까지 프롬프트에 입력해야 한다.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 앞 연못가에 한 남성이 무릎 꿇은 채 수면을 어루만지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이번 전시 사진들은 대부분 한 장을 만드는데 400장에서 2000장을 만들다가 계속 수정하며 마지막 한 장으로 나온 것들이다. 주로 쓰는 미드저니(AI)로 하면 한 번에 4장씩 나온다. 어떨 땐 쉽게 나올 때도 있다. 나온 이미지를 조금씩 바꾸며 사실감을 더한다. 평균 두세 시간은 적게 걸리는 편이다. 한 장에 6시간이나 10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밤을 새워도 안 나올 때도 있다. 해 놓고 마음에 안 들면 시간을 두고 나중에 다시 수정하기도 한다. 재밌는 건 필름 사진을 처음 배울 때 사진 암실에서 하얀 인화지 위에 내가 찍은 상이 조금씩 나오는 것처럼 AI에 몇 글자를 치면 상이 떠오르는 게 재밌고 신기하다.

미국 미주리주의 평원 한가운데서 낮은 각도로 바라본 거대한 토네이도가 검은 하늘을 뚫고 솟구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 사진가 오승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AI와 함께 공존할 것이다. 뉴스 사진이나 다큐 사진은 사람이 계속 카메라로 찍을 것이다. 광고나 예술 사진은 당분간 공존하겠지만 연출해서 만드는 사진이나 그래픽 요소가 들어가는 사진은 대부분 AI 사진으로 대체될 것이다. AI 사진은 스튜디오나 조명, 모델, 카메라도 필요 없다. 이미 상업 사진이나 영화 제작에서 AI 활용이 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AI 데이터는 더 많아질 것이고 현재의 편향되거나 미숙한 AI 이미지들은 보완될 것이다.

AI 사진전을 연 사진가 오승환

전시는 1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