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에 의지해 어둠 속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사방에서 거대한 폭포가 쏟아진다. 발걸음 따라 물줄기가 갈라지고 아이들은 작은 언덕을 미끄럼틀 삼아 웃음을 터뜨린다. 작품명 ‘Universe of Water Particles on a Rock where People Gather’. 관람객이 들어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디지털 아트다.
디지털 아트 뮤지엄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는 지난해 2월, 도쿄 오다이바를 떠나 아자부다이힐즈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2018년 첫 개관 당시 연간 230만 명이 다녀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은 단일 작가 미술관으로 현재도 인기는 여전하다. ‘경계 없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지도도 정해진 동선도 없다. 1만㎡ 전시장 안에 560여 대 프로젝터와 컴퓨터, 수백 개 센서가 설치돼 관람객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70여 점 작품이 끝없이 변주된다.
인기 있는 공간 중 하나는 ‘Infinite Crystal World’. 수천 개 LED가 거울에 반사돼 끝없이 확장된다. 작은 발걸음에도 빛의 패턴이 달라지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눈앞에 펼쳐진 광휘는 마치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처럼 관람객을 감싼다. 구석에 자리 잡은 ‘디지털 신선’들은 현실을 잠시 잊은채 명상을 하기도 한다.
팀랩은 2001년 엔지니어 출신 이노코 토시유키가 세운 전문가 집단이다. 미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건축가, 음악가 등이 함께하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문다. 작품과 공간은 관람객을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동 창작자’로 끌어들인다. 카메라나 휴대전화로 촬영할 경우 조리개는 최대 개방하고 셔터스피드는 1/30초에서 1/125초 사이로 설정하면 풍부한 색감과 노출을 확보할 수 있다. 촬영은 다른 관람객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삼각대와 셀카봉만 제외하면 적극 권장된다.
몰입과 체험을 내세운 전시는 전통적인 미술 감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때로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다. 셀카나 인증샷에 몰두하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관람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예술을 즐기는 방식을 바꿔 놓은 것은 분명하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람객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