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무성한 이 계절엔 어디든 잡초가 흔하다. 쉽게 자라지만 뽑아도 또 나오는 게 잡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 자라나서 빈 집이나 인적 없는 골목, 가로수 그늘에서도 잡초는 잘 산다. 하지만 잡초라는 풀은 없고 저마다 이름을 가진 식물이다.
잡초의 생명력을 알게 된 첫 기억은 대학 때 농촌 봉사활동을 갔을 때였다. 벼가 무성한 논에서 자라는 피를 뽑았는데, 피는 뽑아서 버린 하수구에서도 안 죽을 만큼 생명력이 강했다. 같은 과 식물로 맛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재배되지 않는 피는 벼가 자라는데 방해된다고 가장 먼저 제거되는 잡초다.
다음 잡초의 기억은 군대에서 였다. 봄부터 초가을까지 근무나 훈련이 아니면 목장갑에 낫 한 자루 쥐어 주고 무조건 나가서 잡초제거라는 낫질을 해댔다. “낫 세 자루는 닳아야 제대 한다”며 말년 병장들은 잡초가 무성하면 적이 안보여서 군대도 아니라고 했다. 사실 군 시절의 태반은 잡초 제거로 보냈다. 휴가 나오면 사격이나 훈련, 점호 같은 군인 다운 경험만 강조했지만.
또 사진기자가 되어 지방을 갈 때마다 빈집들을 찍었는데 다 쓰러져가는 폐허에서 맨 먼저 보이는 건 푸르게 자라난 잡초들이었다. 풀들이 무성할수록 얼마나 오래 방치된 집인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지구에서 주인은 사람보다 어디든 잘 자라는 잡초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잡초 중에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고 있는 것도 많다. 쑥은 떡이나 차, 약으로 먹고 민들레나 돌나물도 약효 뿐 아니라 반찬으로도 자주 먹는다. 질경이, 명아주, 개망초 등도 된장국에 넣어 먹거나 국거리, 무침으로 사용되지만 아무 곳이든 자라니 잡초로 분류될 뿐이다.
도심에서 자라는 잡초는 나무와 풀이 무성한 숲이나 산에서 다른 종자들을 피해 비교적 강자들이 없는 도시로 나온 도망자들이다. 식물도 주변에 자신보다 더 잘 나가는(자라나는) 경쟁자들이 있으면 그만큼 살기 어렵다. 일본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사람들이 발아시기를 알고 씨를 뿌리기 채소와 다르게 잡초는 당장 싹을 틔우지 않는 대신 “발아에 적합한 ‘시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잡초는 언제 싹을 틔울까? 잡초를 포함한 야생식물은 땅 속에서 숨어 있다가 봄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서 나오는데, 전제 조건이 겨울 추위 같은 저온을 경험한 후로 이를 ‘저온 요구성’이라고 했다. 새싹이 나오기 위해 묵묵히 몇 년 혹은 몇 십 년도 기다리는 씨앗이 있다.
잡초가 종자를 번식하기 위한 노력은 기다림만이 아니다.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꽃을 피우거나 씨앗을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새의 분비물 속에 혹은 길가나 차도에 피어나 사람들의 신발이나 자동차 바퀴에 묻어 멀리 씨를 퍼뜨린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에 맞게 변하는 생명들만 살아 남는다고 했다. 지금 지구상에 모든 생명은 변화에 적응해서 남은 후손들인 셈이다. 후미진 골목 구석에 박혀 있는 저 흔한 잡초도 살기 위해 그러는데 사람이 어떻게 변화를 피할까. 세상이 달라지고 환경이 변하면 위험을 감수해도 변하는 길 밖에 없다.
자문 : 김민철 조선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