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한 장 13. 문진우가 본 낭만의 80년대 부산
“남포동은 내 없이도 잘 있드나?”
70, 80년대 부산 청년들이 군대를 가면 친구들에게 안부를 이렇게 물었다. 서울의 명동이나 신촌처럼 그 시절 부산 남포동과 광복동은 서면과 함께 청년들이 즐겨서 찾던 시내 중심가였다. 50년 동안 부산을 찍어온 사진가 문진우(66)의 전시회가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에 있는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남포동 블루스’라는 전시 제목에서 느껴지듯 전시에 걸린 사진들은 80년대 중후반에 집중되어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옛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건 그 시절에 살았고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가는 남포동과 광복동, 자갈치시장에서 팔던 고갈비 식당들을 기억했다. 소금을 뿌린 고등어구이를 소주와 물김치에 곁들여 먹던 미화당백화점(부산 최초의 백화점으로 2001년에 폐점) 뒷골목 식당들은 이제 다 사라지고 딱 한 집만 남아있다.
그 시절 부산에선 TV 안테나만 있으면 집에서도 일본 방송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멋쟁이들의 유행이 가장 빠르게 들어왔다. 그 시절을 사진가는 “낭만의 시대”라고 했다. 무엇이 낭만이었을까? 문 씨는 “모두 앞을 보고 달리는 사회였지만 뒤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있었던 시대”라며, 모두 돈을 벌려고 애썼지만 없는 사람들도 돌아보며 나누고 살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전시에 나온 사진들 가운데 유독 극장의 영화 간판이나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가 사진에 많았다.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도시답게 그 시절에도 남포동과 광복동엔 영화 개봉관이 많아서일까? 하지만 사진가는 특별히 영화를 대상으로 의식하고 촬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로버트 프랭크나 윌리엄 클라인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보면서 부산 거리를 촬영했던 문진우는 시각적인 요소를 찾다 보니 영화 소재가 많이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애마부인(1982)’ 시리즈 같은 야한 영화들, 프로야구 출범(1983)과 서울올림픽(1988) 등이 야간 통금 해제(1982) 이후 밤 문화와 함께 쏟아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때였다. 닮은 듯 안 닮게 그려진 주연 배우 얼굴의 영화 간판들,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은 이제 현실에선 볼 수 없고 이렇게 오래된 사진들 속에 남아있다.
1980년대 부산 남포동에선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면 사람들은 ‘그래 한번 잘 찍어봐라’는 표정으로 당당히 서 있었다. 요즘은 “카메라 메고 산책하기가 겁난다”며 거리에서 사진 찍는 사람을 몰카범으로 보는 현실을 아쉬워했다. 최근 자신에게 사진을 배운 학생 한 명이 바닷가에서 풍경을 찍다가 해변에 있던 사람에게 고소를 당한 일도 있다고 했다.
시절은 가고 우리들 모습도, 생각도 변한다. 전시는 4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