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서울 여의도 한강 공원 풍경./ 사진가 이대원

영화 세트처럼 꾸민 듯 깔끔하고 낯선 강가의 풍경 사진, 이곳은 서울 한강이다. 이대원(46)은 16년 동안 한강 사진만 찍었다. 사진가는 우리가 한강이라 부르는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 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 검룡소부터 김포 하류까지 강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한강의 사계절과 강변에서 사는 나무와 풀, 새들과 물 위의 반짝이는 윤슬까지도 카메라에 아름답게 담았다. 그가 찍은 한강 사진들을 모은 첫 전시가 25일부터 열려 찾아가 보았다.

이 사진은 다리와 비둘기 한 마리가 강물 위에 투영된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가 이대원

전시가 열리는 곳은 서울 성수동 뚝도청춘시장 입구에 오래된 목욕탕 건물을 개조한 낡은 건물로 이름도 ‘싸우나스튜디오’였다. 느와르 영화 속 뒷골목에 나올 법한 건물의 비상 철제 계단을 걸어서 전시장인 3층을 올라가 보니 벽과 천장, 창문이 심지어 목욕탕 굴뚝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는 상업용 사진 스튜디오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진가도 이곳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사보나 잡지용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한강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명함에도 ‘한강 사진가’라고 적혀 있었다.

이대원의 한강 사진전이 열리는 장소는 서울 성수동의 오래된 목욕탕 건물을 개조한 사진 스튜디오 건물이다. 전시장 한쪽 벽에 16년간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한강 모습이 6미터 길이로 전시되어 있는데, 같은 곳이지만 모두 다른 풍경이다./ 조인원 기자

전시장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백 장의 한강 사진을 이어 붙인 6미터짜리 사진들로 컬러는 서울 광진구에서, 흑백은 경기도 구리시 암사대교 아래에서 찍은 것이다. 그런데 같은 곳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단 한 장도 똑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안개에 가려 강물이 보이지 않거나 하늘도, 다리의 모습도 달랐다. 우리가 사는 곳은 매일 같아 보여도 그렇지 않음을 사진가는 자신의 작업으로 보여주었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지난 2014년부터 나온 한국문학전집 33권의 표지 사진은 모두 이대원이 촬영한 한강 사진들이다./ 조인원 기자

전시장 창문 옆에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소설부터 은희경, 김채원, 윤흥길, 성석제 등 유명 작가들이 쓴 책인데 2014년부터 출간된 문학동네의 한국문학전집으로 그동안 나온 33권 모두 책 표지가 이대원이 촬영한 한강 사진이었다. 이 씨는 오래전 출판사를 찾아가 자신이 촬영한 한강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나중에 출판사로부터 연락받고 전집 표지 사진들로 실린 것이라고 했다. 사진가가 책의 내용을 보고 어울리는 사진들을 5장 정도 골라서 보내면 작가가 직접 마지막 한 장을 표지로 선택한다고 했다.

한강변에 흔들리는 갈대. 이 사진은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한국문학 전집의 표지 사진 중 하나로 실리기도 했다. 그동안 나온 전집 33권 모두 이대원의 한강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다./사진가 이대원

한강 사진만 16년 찍으니 한강 전문가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을 보자 이 씨는 한강에서 유래된 역사와 이야기를 쏟아냈다. “서울 광나루는 한때 강원도에서 벌목한 나무들을 뗏목으로 가지고 와서 팔았을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떼돈을 벌었다’는 말이 거기서 유래되기도 했구요. ”

서울 아차산에서 바라본 폭우 내리는 한강./ 사진가 이대원

한강만 왜 그렇게 오래 찍었는지 궁금했다, 사진가는 자신이 “배울 때 남들보다 느려서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한 가지를 꾸준히 해야 하는 타입”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자고 마음먹고 집에서 5분이면 걸어가는 한강을 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강을 찍으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여러 곳을 찾아보아도 대부분 예쁜 한강 풍경이나 불꽃놀이 야경 같은 사진들이었다고 했다.

사진가는 이게 아닌데 싶어 자신만의 눈으로 본 한강을 찍어보자고 시작했다. 이해력이 느리고 잘 잊는 탓에 가능하면 노트에 쓰고 한 가지를 반복해서 오래 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처럼 느린 사람은 잘못되었을 때 돌아가는 것도 오래 걸려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강 사진만 8년쯤 찍었을 때 자신이 제대로 하는 건지 궁금해서 배병우 사진가,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등을 찾아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여주고 조언을 받기도 했다.

강물 위에 반사된 윤슬 사진을 여러 장의 레이어로 합성한 사진, 물결에 반사된 선과 면이 섞이면서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이대원은 한 장으로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표현적인 시도와 영상을 통해서도 한강을 보여주고 있다./사진가 이대원

그가 처음 찍기 시작한 한강은 광진구 아차산대교 교각이었다. 아차산대교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아니라 강북강변도로를 따라 세워진 다리. 그렇게 같은 장소를 삼각대에 캐논 5D 마크 시리즈를 바꿔가며 계속 한강 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부터는 경기도 구리시로 이사해서 강 건너 청계산과 롯데월드타워를 놓고 찍고 있다. 똑같은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이대원은 바닥에 삼각대를 놓는 지점을 매직으로 표시한다고 했다.

구리로 이사 온 후에도 사진가는 계속 강 건너 청계산과 롯데월드타워가 보이는 풍경을 똑같이 찍었다. 하지만 어느 한 장도 같은 모습은 없었다. 이대원은 매일 찍어도 쌓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게 사진이라고 했다./사진가 이대원

같은 곳을 반복해 찍어도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게 사진

같은 곳에 다시 가면 뭐가 찍을 게 보이나를 물었다. 새로운 게 없으면 카메라를 들지 않는 사진기자의 직업병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같은 곳에서 다른 새로운 모습을 찾는가 아니면 새로운 모습이 보이는지도 질문했다. 한 번 보았던 비슷한 모습들은 누구든 스쳐 지나고 새로운 모습을 찾아 낯설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그래서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라고도 하니까.

서울 올림픽대교를 볼 때면 다리 위에 횃불 조형물을 설치하다 발생된 공군 헬기 사고(2001)가 생각나서 사진가는 늘 마음이 슬펐다고 했다. 그 마음을 다르게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강변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저속으로 찍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처럼 촬영되었다./ 사진가 이대원

이대원은 달랐다. 똑같은 장소를 가도 일단 찍어놓고, 기록했다. 역시나 느리고 잘 잊는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또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으면 나중에 아카이브(자료)로 쌓여 같은 장소라도 완전히 다른 모습들이 보인다”고 했다. 전시장에 걸린 한강의 풍경도 모두 사진가가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찍은 수많은 한 컷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아울러 같은 곳을 찍으면 사진가가 다르게 찍는 시도도 한다. 그 예로 전시장 벽에 걸린 올림픽대교의 조형물 사진을 들었다. 사진가는 올림픽대교의 조형물을 볼 때마다 지난 2001년 다리 위에 횃불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하다가 추락한 공군 헬기 사고를 떠올리면서 항상 슬픈 마음이 들었다. 사진엔 텅 빈 하늘 아래 작은 횃불 조형물 밑으로 검은 연기처럼 번지는 것들이 보였다. 강변에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저속으로 촬영한 것으로 흑백으로 프린트하니 전혀 다른 풍경이 되었다. 이 사진도 수십 컷의 다르게 시도한 사진에서 고른 것이라고 했다. 이대원은 우리가 매일 반복해서 보는 모습도 일단 계속 찍고 비교해 보면 나중에 전혀 달라진 모습을 알게 되는 게 사진이라고 했다.

서울 반포 한강공원의 눈 내린 풍경. 사진가는 주로 새벽 시간처럼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 촬영을 하러 간다고 했다./사진가 이대원

전시장은 3층과 지하에서도 이어지는데 지하 전시장엔 화면으로 이씨가 촬영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한강의 여러 모습과 새와 나무, 인공섬들도 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한강 사진가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