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들이 점자를 읽고 있다. 이 학교는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0~5세)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특수학교다. /박성원 기자

“처음 읽는 점자라 틀릴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볼게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홍지윤양(5)이 밝게 웃으며 한 말이다. 2년 전 지윤양은 하루종일 말 한마디 없는 아이였지만, 현재는 활발하고 자기주장을 또박또박 말할 줄 아는 쾌활한 아이로 변했다.

0세부터 5세까지의 영유아 시기는 뇌신경 발달이 왕성한 시기로 두뇌 발달의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인지기능과 언어발달, 운동기능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교육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들도 마찬가지로 골든타임에 맞춘 올바른 교육이 필수적이다.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는 안전바가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 아이들마다 키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은 시각장애 영유아들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 /박성원 기자

시각장애 영유아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는 전국에 단 한 곳 있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서울효정학교(이하 효정학교)’다. 이 학교는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0~5세)만을 교육하는 특수학교로 교육부의 인가를 받았다. 현재(9일 기준) 22명의 영유아들이 재학 중인데, 이 중 경상북도 경주시와 상주시, 충청남도 천안시 등 지방에서 온 아이들도 있다. 효정학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부모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가 5세가 되면 특수학교 유치부를 보내는 게 대다수였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정안(正眼) 영유아보다 사회화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통합교육에도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0세부터 조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이 모여 효정학교를 설립했다.

효정학교는 영유아 개개인의 발달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유아특수교사 자격을 지닌 교사들과 지원인력들이 아이를 1명씩 전담해 교육하는 것을 지향한다. 손의 감각을 최대한 살려 사물을 스스로 탐색하게 만드는 능력과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기초적인 교육부터 시작한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나게 되면 점자 교육과 보행 교육을 실시한다. 이와 함께 숲 체험, 승마 체험, 태권도 같은 체육활동, 피아노 연주 같은 음악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런 체험을 통해 정안 영유아와 동등한 관계로 길러내고, 졸업 후 통합교육에 차질이 없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온전한 자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일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가 피아노 수업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밝고 명랑했다. 본인의 의사를 막힘없이 표현하는 아이들이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했다. 이 중 A양(5)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고 했다. 악보를 볼 수 없음에도, 정확한 음계로 노래 한 곡을 연주했다. 평소에도 피아노를 즐기는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효정학교는 아이들 교육에 진심이었다. 학교 측이 개발한 점자학습기 ‘점자 톡톡’은 시각장애 영유아들이 점자에 대해 놀이로 인식하게 하고, 동시에 점자를 쉽게 외울 수 있게 해준다. 이와 함께 학교 측이 만든 다양한 학습용 교재를 통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점자를 손으로 읽으며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됐다.

서울효정학교 교사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만든 시각장애인용 졸업 앨범. 얼굴 모형과 점자가 새겨져있다. 이름 옆 검정색 버튼을 누르면 졸업생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성원 기자

효정학교는 2017년에 설립돼 현재까지 4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6명의 아이들이 졸업한다. 학교에서는 졸업생들을 위해 졸업 앨범을 준비해 줬다. 보통 졸업 앨범이라고 하면 졸업생 사진과 이름이 지면에 프린팅 된 앨범이 떠오른다. 하지만 효정학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시각장애인용 졸업 앨범을 만들었다. 졸업생의 얼굴은 조각으로 만들었고, 이름은 점자로 쓰여있었다. 또 버튼을 누르면 졸업생의 음성 편지를 들을 수 있었다. 교사들의 정성과 노고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서울효정학교'에서 시각장애 영유아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효정학교는 영유아들이 쉽고 재미있게 점자를 공부할 수 있도록 '점자 톡톡'을 개발하고 졸업생들을 위해 얼굴조각, 점자 이름, 음성 편지가 담긴 졸업 앨범을 선물하는 등 조기교육에 진심이었다. /박성원 기자

한편, 21년째 시각장애 영유아를 교육해 온 정은진 효정학교 교감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무엇보다 주도적으로 클 수 있게 교육하는 게 사명”이라며 “학교에서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 여태껏 해왔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때가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 모습.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들이 '별님반'임을 인식할 수 있게 별 모양 인형이 부착돼 있다. 인형 밑에는 점자가 새겨져 있어 사물의 모양과 이름을 손으로 만지며 기억할 수 있게 했다. 교사들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박성원 기자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지난 9일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 입구 모습. 이곳은 출입문부터 시작해 복도 끝까지 발에 걸리는 턱이 없다. /박성원 기자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에서 한 영유아가 보행연습을 하는 모습. /박성원 기자
서울 강북구 서울효정학교 전경. 이 학교는 시각장애를 가진 영유아(0~5세)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국내 유일한 특수학교다. /박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