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으로 포장되어 자연환경을 파괴한 태양광 발전시설로 덮혀 있는 춘천 소양강 붕어섬의 흉물스러운 모습./ 사진가 고재희

가볍게 한 장 11. 고재희의 ‘Signal of Doomsday(종말의 신호)’ 사진전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에 있는 붕어섬은 섬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덮여 있다. 섬 이름처럼 태양광 패널도 붕어빵 모습으로 설치되었지만 저조한 발전량과 이용률로 지역 주민들과 도의회는 친환경 공원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고교 시절 섬의 푸른 잔디 위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한 추억을 가진 고재희(64) 사진가는 40년 만에 찾은 현재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환경 파괴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한 고재희의 ‘Signal of Doomsday(종말의 신호)’ 사진전이 현재 서울 서대문구의 온에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고기와 기름, 뼈, 수염 등을 활용하기 위해 인간들의 무분별한 포획과 선박 충돌 등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흰수염고래 뼈의 모습. 미국 알래스카주/ 사진가 고재희
금강 하구 갯벌 주변에 들어선 골프연습장, / 사진가 고재희

전시된 사진들은 사진가가 지난 2021년부터 최근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촬영한 사진으로 과장되지 않은 앵글로 기록했다. 사실 고 씨의 본업은 사진가가 아니라 서울의 한 약학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약대 교수가 어떻게 환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가가 되었을까? 대학 교수가 되기 전 20년 넘게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약물 실험 후 버려지는 폐기물을 보면서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고민하다가 사진은 우연한 계기로 배웠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로 미국 최북단 알래스카에서 온도가 상승하여 빙하가 녹아 계곡에 흘러내리는 모습, 미국 알래스카주/ 사진가 고재희
폐업으로 충주호 리조트 주변 시설들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다, / 사진가 고재희

어느 날 딸의 대학 졸업식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대부분 눈을 감은 모습의 사진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사진을 못 찍느냐”는 가족들의 타박을 듣고,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수소문 끝에 서울의 한 구청에서 운영하는 강좌에 등록했다. 그때 사진을 가르치던 홍인숙 사진가가 한 가지 주제로 1년 간 촬영해서 사진 책을 만드는 과제를 냈고, 고 씨는 자신이 오랫동안 갖고 있던 환경 문제를 주제로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을 시작한 2021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바이러스 공포에 갇혀 있던 상황이었다. 코로나19도 결국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는 생각은 인간이 파괴한 자연환경이라는 문제 의식으로 이어졌다.

폐업으로 방치된 충주호 리조트 앞 호수에 깨진 오리배가 물속에서 간신히 머리만 내놓고 잠겨있다. 2030년에 우리나라 해안가의 약 5%나 되는 국토가 바닷물에 잠길 수 있다는 뉴스에 착안했다/ 사진가 고재희

전시된 사진들은 우리가 파괴한 자연이 현재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린다. 풀밭 옆에 버려진 동물 뼈는 무분별한 포획으로 사라져가는 미국 알래스카의 흰수염고래다. 온난화로 빙하가 모두 녹아 알래스카의 눈과 얼음은 검은 계곡 사이로 봄날 잔설처럼 간신히 남아 전시 제목처럼 아픈 지구가 보내는 마지막 신호처럼 보이기도 했다.

금강하구 장항항. 바벨탑 같은 굴뚝과 쓰레기 더미 아래 녹슨 닻의 모습은 인간이 생산한 환경오염이다/ 사진가 고재희

금강 하구의 갯벌 주변에 버려진 닻과 쓰레기들, 골프연습장, 산업단지와 폐업으로 버려진 리조트 등은 어쩌면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쩌면 자주 보니 환경 파괴인 줄 알면서도 심각성을 잊고 무뎌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개발하다 보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겠거니’ 하거나 친환경으로 포장된 환경 파괴 시설도 계속 짓고 있는 현실을 사진가는 안타까워하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가는 현장을 찾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마친 후 구글 어스(Google Earth) 앱으로 미리 찾아갈 현장의 광선의 각도나 날씨 등을 고려해서 찾는다고 했다.

암벽화에 새겨진 사람과 동물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 현지 해설가는 왼쪽 첫째와 둘째가 동물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들과 자연이 서로 공존하며 지구의 생태계를 지켜야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 사진가 고재희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생명수와 같다. 미국 네바다주/ 사진가 고재희

사진 중 붉은 바위에 새겨진 고대 암각화는 사람들과 동물이 손을 잡은 모습으로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1982년 미국 갓프리 레지오 감독의 실험적 다큐 영화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사진가는 말했다. 코야니스카시란 미국 호피족 인디언 말로 ‘균형을 잃은 삶(Life Out of Balance)’이란 뜻. 전시는 1월 12일 까지.

사진가 고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