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 작가의 '신과 당신을 위한 방, 2023 연작'. 작가는 세상에 없는 모습을 사진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공간 설정과 카메라와 렌즈, 필름까지 설정한 명령어(프롬프트)를 제시한다고 했다./안준 제공

인공지능(AI)이 만드는 이미지의 발전 속도는 무섭도록 빠르다.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 없이도 몇 글자만 입력하면 스토리까지 구성해서 5분짜리 동영상을 뚝딱 만든다. 내레이션의 음성은 매력적인 톤의 여러 성우 목소리로 선택이 가능하다. 삽입된 영상의 일부나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스토리 구성도 어느 부분이 부족하면 쉽게 바꿀 수 있다. 이미 인비디오(In Video)나 런웨이(Runway)같은 AI 영상편집기가 보편화되었고, 며칠 전 오픈AI의 소라(Sora)가 일반 유료 독자들에게 공개되어 기술 경쟁은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대만큼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가자(Gaza)지구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 사진 중 소셜미디어로 공유되는 AI 가짜 사진이 늘면서 걱정도 커지고 있다. 과연 AI는 가짜만 쏟아내는 기술일까?

안준 작가의 '굿모닝존, 2022 연작'. 화면 오른쪽에 빛이 샌 것처럼 노랗게 처리된 부분은 AI가 수집한 필름 사진 데이터의 결과물의 하나다. / 안준 제공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트스페이스J에서 열리는 안준과 정현목의 ‘뉴픽처스(New Pictures)’는 AI 사진의 예술적 실험을 보여주는 전시(12월 26일까지)다. 두 사진가는 각자 다른 분야에서 예술 사진을 해오다가 미드저니(Midjourney)나 마이크로소프트빙(MS Bing)의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사진들을 실험하고 있다.

안준 작가의 '신과 당신을 위한 방, 2023 연작'중 하나.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을 한 남자가 의지하는 모습들이 나왔다./ 안준 제공

안준은 2022년 생성 이미지 기술이 공개되자 여러 의문이 들었다. 인공지능은 문화권이나 개인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는 추상명사를 어떻게 보여줄까? 세상에 없는 이미지는 어디까지 나올까? 등등. 작가는 AI에게 ‘인공지능의 자화상을 보여 달라’거나 ‘신의 모습을 그려봐’ 같은 황당한 요청으로 AI의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했다. 대신에 AI에게 명령어로 카메라나 렌즈의 종류, 프레임 안에 설정된 시공간과 인물 등을 상세하게 넣었다. AI는 구체적인 명령(프롬프트)일수록 정교한 이미지를 생성했다.

안준 작가의 '신을 위한 방, 2023', 뿔이 난 악마의 형상이 지구본을 보는 형상이 나왔다./ 안준 제공

현재 전시 중인 안준의 ‘신과 당신을 위한 방, 2023′ 연작들은 방 한가운데 거대한 그리스 신 조각상에 기대거나 기도하고, 입을 맞추거나 위로를 받는 모습이다. 전시 사진 중 온통 붉은 방에 뿔을 가진 형상이 지구본 앞에 앉은 모습도 있었다. 작가는 “AI는 신의 형상을 인류가 형상화한 방대한 데이터에서 불러온 것인데 가끔 악마의 모습이 나온다”라고 했다. 지구 어딘가에서 신(god)은 우리가 모르거나 다르게 보이도록 규정된 것이다.

안준 작가의 '더 이상 꿈꾸지 않을 때 까지 연작', 2000년대 초반 우연히 만난 미국인들과의 대화를 회상하며 미드저니로 만든 생성이미지./안준 제공

안 씨는 지난 10월에 AI로 만든 사진들을 모아 ‘Until you left off dreaming about(더 이상 꿈꾸지 않을 때까지)’을 일본에서 책으로 내고 지난달 2024 파리 포토 페어에도 공개했다. 작가가 유학시절 미국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억하며 모두 인공지능 ‘미드저니’를 이용해 상상으로 시공간과 인물을 설정해서 이미지를 만들었다. 1970년대 자유로운 예술가들을 찍은 낸 골딘(Nan Goldin)의 사진들처럼 책 속엔 클로즈업된 수많은 사람들이 화보처럼 펼쳐져 있다. 작가는 미드저니가 요정 같은 3D 캐릭터 얼굴이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자연스러운 얼굴을 뽑기 위해 어떤 부분에 흠결을 갖는지를 묘사해야 한다고 했다.

Generated Vanitas - Jan Davidsz. de Heem / 정현목 제공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형식인 바니타스(Vanitas) 그림을 재해석해 현대 소비 사회를 비판하는 사진 작업을 해온 정현목은 이번 전시에도 바니타스 정물화를 미드저니로 만들었다. 작가는 ‘Generated Vanitas(생성된 바니타스)’ 작업 노트에서 적극적인 명령어(프롬프트) 수정을 통해 더 사진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이런 수정 작업으로 얼마나 정교하고 사실적인 이미지 생성이 가능한지를 탐색했다. 사진가는 세부 묘사나 질감 등을 여러 번 수정했지만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자동성은 완전히 통제되지 않고 의도와 달리 회화적인 표현과 사진적인 표현이 공존하는 이미지가 생성되었다”라고 했다. 그림을 사진으로 실사화하는 과정에서도 붓 터치와 같은 일부 회화적 질감은 남았다고 했다.

Generated Vanitas - Willem Claesz. Heda/ 정현목 제공

AI 생성 이미지와 실제 정물을 배치해 놓고 촬영한 사진의 차이를 감상자들이 어떻게 다르게 느낄 것인가를 작가에게 물었다. 정 씨는 앞으로 사람들이 예술사진에서 생성 AI로 만든 것을 감안해도 사진과 같은 느낌으로 감상할 것이라고 했다. 위험한 장면이나 스펙터클한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이 대신하는 영화를 관객들은 다 알고 보는 것처럼, 사진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중요하지 정물 사진에 AI가 사용됐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Generated Vanitas - Willem Kalf / 정현목 제공

AI 이미지가 예술로 발전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함께 질문했다. 안준은 사진이 그림이 가진 재현 기능을 대체했듯 AI는 “개념을 시각화하는 과정을 일부 대신하며 기존 매체들과 함께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정현목도 현대 미술이 사진과 영상의 실험을 통해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듯이 “AI도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열 것”이라고 전망했다.

Generated Vanitas - Roelandt Savery/ 정현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