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째 괴상한 소음에 시달려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대남방송 확성기 소음을 듣고 사는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주민들(총 147가구)이다. 이 마을에는 북한과의 직선거리가 약 1.5km 정도밖에 안 되고, 소음을 막아주는 지형지물이 없어 대남방송이 그대로 넘어오는 집들이 있다.
지난달 28일과 12월 5~6일에 찾아간 강화군 당산리는 괴상한 소음 때문에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새벽에 깜깜한 거리를 다녀보니 소름 돋는 비명소리에 등골이 오싹했다. 취재 후 숙소에서 잠을 청했지만 새벽 늦게까지 대남방송 확성기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종종 대남방송이 멈출 때가 있었지만 10분 정도 지나면 또다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또 언제 소리가 날까 조마조마한 불안감에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은 지난 7월 말부터 접경지역 모든 지역에서 울려 퍼졌다. 소음을 들어보니 정확하게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고문을 받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늑대 울음소리, 금속을 긁는 소리, 까마귀 울음소리, 바람 소리 등 다양한 소음을 한데 모은 듯한 소리였다.
대남방송 소음이 시작되고 이곳 주민들이 ‘지옥에서 사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새벽에 소음을 들어보니 그 말 뜻을 이해하게 됐다. 5개월째 대남방송 확성기 소음을 들으며 지내는 당산리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됐다.
지난달 28일 오후 만난 당산리 이장 안효철(66)씨는 대남방송 확성기 소음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양쪽 시력에 큰 문제가 생겼다. “10월부터 갑자기 앞이 안보였다. 급히 병원을 찾았고 두 달째 이곳저곳 병원을 다닌 결과 4번 뇌신경이 스트레스로 장애를 일으켜 양쪽 시력이 손상된 것”이라고 했다. 검사에 들었던 모든 비용과 약값은 본인 돈으로 지불했다.
안 이장은 “집 근처에서 소음을 측정하면 85데시벨 정도 나온다”고 했다. 85데시벨은 공사 현장이나 지하철 소음과 맞먹는 수준이다. 해당 소음을 지속적으로 듣게 될 경우 청력 손상은 물론 정신건강에 해를 끼친다.
당산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대남방송 소음 때문에 밤잠 설치는 것은 기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박혜숙(75)씨는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등이 왔다 갔지만 소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만약 서울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5개월째 가만히 있겠나”라고 했다. 또 “언제까지 소음을 듣고 살아야 할지 참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정이(79)씨는 “수개월째 소음에 시달려 잠을 못자니까 밥맛이 없다”며 “항상 긴장하며 지내니 신경안정제를 먹고 산다”고 했다. 이옥란(82)씨도 신경안정제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수차례 말했다.
마을 사람들 중 대남방송 소음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하루에 수 알씩 복용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취재 당시 만난 열댓 명의 어르신들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인천 강화군보건소가 당산리 주민 78명의 정신건강을 검사한 결과 10% 정도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고, 경기 김포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난달 8∼14일 접경지 주민 102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사를 진행한 결과 2명은 ‘고위험군’, 27명은 ‘관심군’으로 진단됐다.
한편 인천시는 예비비 3억 5000만 원을 들여 올해 안에 당산리 35개 소음 피해 가구에 방음창과 방음문을 설치하기로 했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당산리 주민 안미희 씨가 무릎을 꿇고 대남방송 소음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다.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한 채 국감장에서 끌려나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안 씨는 “소음을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우리가 겪는 심정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의 자녀들은 여전히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자 편도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지 나랏일 하시는 분들께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