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인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풍경. / 고운호 기자

전국에 눈 폭탄이 쏟아진 지난 27일, 대한민국 전역이 설국으로 변했다. 11월에 이렇게 많은 눈이 서울에 내린 것은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117년 만의 일이다. 이번에 내린 눈은 수분을 가득 머금은 습설(젖은 눈)로,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을 때 내리는 눈이어서 물을 많이 함유한다. 솜사탕처럼 보이지만 축축하고 무거운 것이 특징이다. 이는 찬 공기가 따뜻한 서해를 통과하면서 많은 수증기를 흡수해 발생한 현상이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다음 날인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 풍경. 아름다운 설경 아래 습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 고운호 기자

28일, 대설주의보 해제 소식을 듣고 인왕산에 올랐다. 인왕산은 오르막이 짧아 조금만 인내하면 청와대와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경을 선사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다. 정상 인근의 범바위는 주변에 풍경을 가리는 나무가 없어 굉장히 높은 곳에 올라선 듯한 개방감을 주어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좋다. 정상에 도착하자 눈 덮인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졌다.

지난 11월 28일 서울 인왕산 자하문로 등산길에 습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가 등산로를 막고 있다. / 고운호 기자

하지만 상대적으로 등산객이 적은 자하문로 등산로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곳곳에 있었다. 일반적인 눈은 가루처럼 흩어지지만, 습설은 나무에 강하게 붙어 나무가 꺾일 정도의 부담을 준다. 우선순위인 차도 제설에 밀려 방치된 나무들이 눈에 띄었고, 일부 나무들은 등산로를 가로막아 등산객들은 옷이 찢기거나 눈이 찔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심화되고 이상기후가 빈번해질수록 이처럼 ‘예상할 수 없는 형태’의 사고가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설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것도 잠시,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킨 나무들이 집중호우 때처럼 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11월 28일 서울 인왕산 자하문로 등산길에 습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가 놓여있다. / 고운호 기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다음날인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 풍경. 아름다운 설경 아래 습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쓰러져 등산로 계단을 막고 있다. / 고운호 기자
지난 11월 28일 서울 인왕산 자하문로 등산길에 습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가 쓰러져 등산로를 막고 있다. /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