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대전 서구 갈마동 한 인도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행인들의 발에 밟혀 악취를 풍기고 있다. /신현종 기자

도심의 가로수 길, 바쁜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격히 느려지는 구간이 있다. 보도블록을 점령하고 있는 은행들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단풍, 억새, 낙엽등과 함께 가을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리의 무법자로까지 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은 종자 바깥쪽 육질 층에 악취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밟아 육질 층이 으깨지면 고약한 냄새가 더욱 멀리 퍼지게 된다.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기 때문에 은행은 엄밀히 말하면 열매가 아닌 씨앗이지만, 사람들은 예로부터 은행을 신선로에도 넣고 술안주로도 즐겨 먹는 등 귀한 식재료로 여겼다. 잎은 달여 차로 마시기도 하고 여러 질환에 좋다고 해서 약재로도 쓰였다.

그런데 가을철 은행나무로 인한 악취와 보행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각 지자체 별로 보행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낙과 전 은행나무를 털어 열매를 최대한 채취하여 거리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은행나무 열매는 익는 속도가 각기 다른 만큼 터는 과정을 시간을 두고 한 나무당 2~3회 가량 반복해 진행한다. 열매가 많이 맺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진행하지만 시민 불편 민원이 접수되면 더욱 신속하게 처리한다. 올해는 9월 중순까지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에 의한 스트레스로 은행나무가 생육을 포기하며 평년보다 이른 시기에 열매를 떨어뜨리고 있다. 각 자치구는 10월 말 전 완전한 채취를 목표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확한 은행은 보건환경연구원 등에서 중금속 및 잔류 농약 검사를 거쳐 안전성이 확인되면 경로당이나 사회복지시설에 기증된다.

지난 23일 대전 서구 갈마동 가로수 길에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신현종 기자

은행나무는 나무가 가지는 특유의 독성이 있어 천적이 없다. 그렇기에 병충해에도 강하고 나무의 수명 또한 길다. 게다가 더위와 추위에도 강해 어디서나 잘 자라며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공기 정화 능력도 탁월하다. 불도 잘 붙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점들이 이점으로 작용, 가로수로 채택되어 심어졌다. 그렇지만 가로수의 역할을 저해할 만큼 열매 낙과로 인한 보행의 어려움이 있기에 최근에는 은행나무 중 암나무를 제거하고 있다. 은행나무 열매는 암나무에만 열리기 때문에 암나무를 제거한 후 수나무를 심는 것이다. 과거 가로수를 심던 시절에는 나무가 자랄 때까지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은행나무의 DNA를 분석해 묘목도 암수 구분이 가능해 선택적 식재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와 친근한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린다. 은행나무는 무려 약 2억 8000만 년 전에 출현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은행나무는 생물분류학적으로도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생물분류학은 모든 생물을 큰 순서대로 계-문-강-목-과-속-종으로 분류한다. 은행나무가 특별한 이유는 식물계 중에서 문부터 오로지 한 종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목-은행나무과-은행나무속-은행나무가 된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한 종만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은행나무들이 모두 멸종했기 때문이다. 다른 종이 모두 멸종하고 한 가지 종만 살아남았다는 건 생존이 몹시 위협 받고 있다는 뜻도 된다.

지난 23일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 /신현종 기자

은행나무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적색 목록에 멸종 위기에 처한 종으로 등재되어 있다. 생명력이 강한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이유는 은행나무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번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 씨앗 종자가 크고 무거워 바람으로 인한 이동이 불가능하고 악취와 독성이 있어 동물들까지 꺼리기 때문에 동물을 매개체로 씨앗을 옮길 수 없다. 또 어린 나무가 종자를 맺기까지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멸종될 식물 1위로 꼽히기도 한다. 은행나무 열매에는 독성물질이 있어 충분히 익혀서 먹어야 탈이 없는데 오직 인간만이 은행을 먹을 수 있다. 현재 야생 은행나무는 중국 동부 저장성과 서남부에만 소수 남아있다.

식재료가 귀해 대접 받던 시절과는 달리 거리에 악취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은행나무. 그런데 그 나무가 위기를 맞고 있고 유일한 생존 매개체가 인간이라 하니 악취에 가려지지 않는 공생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지난해 9월 18일 대전 서구 갈마동 가로수 길에서 구청 공원녹지과 직원들이 은행나무 열매로 인한 악취와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열매를 조기 채취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