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회사원 빌라, 2024 서울 연남동 / 사진가 심규동

불 꺼진 빈 방을 들어가는 기분은 괴롭다. 톡이나 전화도 없는 날은 외롭다. 혼자 사는 건 그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혼자 사는 게 유행이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을 엿보는 방송도 오래 전부터 인기다. 우리들 소원은 통일 보다 독립이라며 다들 혼자 살기를 원한다.

1인가구 프로젝트 중 영어학원 강사의 원룸 , 2024, 서울 신림동/ 사진가 심규동

최근 발표된 2024 온빛다큐멘터리사진상 수상자들 가운데 심규동(36)의 ‘1인 가구 프로젝트’(온빛 씰리상) 사진들은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여준다. 혼자 사는 공간들은 저마다 다채롭고 자유롭게 꾸며졌다. 작가는 그들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대신 더 큰 자유와 개성을 누리며 산다”고 했다.

1인가구 프로젝트 중 사진작가의 복층, 2024 서울 구로동/ 사진가 심규동

사진가는 모델, 배우지망생, 래퍼, 군인, 방송국피디, 요리사, 회사원 등이 사는 방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모두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처음엔 지인들의 소개로 촬영했고 요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델을 모집해서 사람들을 만난다. 1인 가구들은 예상보다 더 각자의 개성들이 드러난다. 사진가에게 그런 사람들만 촬영한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방에서 그런 부분만 찍은 건지를 물었다. 그는 “우리는 원래 다 특이한데 다른 사람들이 모를 뿐”이라며 그것이 사진의 주제라고 했다.

1인가구 프로젝트 중 요가학원 원장 자취방 , 2024, 서울 목동/ 사진가 심규동

원룸 거실에 놓인 침대 옆에 커다란 벽시계가 붙어있고 계단 위엔 옷이 잔뜩 걸려 있다. 공간이 거실 하나라서 커튼을 치면 분리가 되지만 걷으면 거실, 침실, 부엌이 하나로 이어진다. 누구의 간섭도 도움도 없는 자기 공간이기에 가능하다. NBA 미 프로 농구팀 로고가 새겨진 모자와 유니폼이 빼곡한 사람도 있다. 방을 채운 침대 하나에 프로젝터로 에니메이션을 보는 사람, 반려견을 식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었다.

1인가구 프로젝트 중 래퍼의 주택, 강릉 교동 / 사진가 심규동

심규동은 지난 2017년 5월 고시텔 사진들로 이름을 처음 알렸다. 한 사람이 겨우 발을 뻗는 비좁은 방 안에 천정 가운데 카메라 장치를 설치해서 촬영했다. 중고로 산 중형 필름카메라(마미야 7)로 줄자로 초점을 맞춘 후 타이머로 촬영했다. 고시원 방은 좁아서 촬영 때는 나가있었다. 디지털카메라는 살 돈이 없었다. 작업은 하나씩 찾아가면서 혼자서 방법을 찾았다. 외부의 방문을 일체 불허하는 고시텔 사람들을 사진가는 10개월간 같이 살면서 촬영했다.

고시텔의 댄스강사, 2016년 서울 신림동 / 사진가 심규동

강원도 강릉에서 사는 심규동은 부모님이 원한 직업인 간호사 대신 다른 걸 하고 싶었다. 집을 떠난 후 서울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카페나 일식집 서빙, 웨딩업체 보조촬영기사, 드라마 엑스트라, 목욕탕 등에서 일하면서 살던 곳이 월세 30만 원짜리 고시원이었다. 3개월씩 계약하고 살다가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서울 압구정동 고시원에서도 살았는데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단기로 살다 가는 외국인들도 만났다. 그는 부자 동네에 있는 고시원을 통해 공간을 낯설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작업노트에는 이런 글이 있다. “나는 결혼을 안 할 것이고, 그럼 자녀도 없을 것이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내 미래였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어야 했다. 희망을 잃고 현실감까지 잃은 것인지 알아야 했다”

서울 신림동 고시텔 복도, 2016 / 사진가 심규동

심규동은 당시 관악구 신림동 등에서 월세가 7만원이나 더 싼 곳을 찾아갔는데, 여긴 돈을 받아도 못 살겠다 싶을 정도로 열악한 방이었다. 그런데 방을 본 후에 워낙 이미지가 강렬해서 잊혀 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딱 1년만 해보자는 생각에 그곳에 살며 고시원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낮 시간에 옆방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기 위해 야간에만 하는 알바를 골라 일했다. 일용직 노동자나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대부분인 그 고시원에서 함께 살며 사진가는 이웃들과 친해진 후 초상권 허락을 맡아 사진 촬영을 했다.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을 받아 전시 액자를 준비했고 사진가이자 시인인 신현림의 소개로 고시원 사진들로 국회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2016년 신림동 고시텔 휴게실, 저녁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사진가 심규동

하지만 언제까지 고시원에 살수는 없었다. 다시 고향 강릉 집으로 돌아왔다. 틈틈이 노트에 적던 메모를 보면서 다음 작업을 1인 가구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키웠다. 그는 20대 때부터 사진에 대한 생각을 노트에 정리한다고 했다. 노트에 글로 적어 놓으면 스스로를 알게 되고 또 사진들이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후에 연결하게 된다고 했다. 1인 가구 작업 노트엔 이런 글이 있었다.

사진가 심규동의 1인가구 프로젝트 작업전 노트 메모들/ 사진가 심규동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평범하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았다. 취향이 잔뜩 묻은 개인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잘 보여준다. 결혼하고 2인 가구가 되면 이런 모습도 사라지는 것 같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1인 가구 시절 모습을 봤다면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부부 사이의 갈등도 줄지 않을까. 1인 가구 프로젝트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1인가구 프로젝트, 방송국 PD의 공공임대아파트, 2024 서울 합정동 / 사진가 심규동

1인 가구는 지금껏 20명 넘게 촬영됐다. 심 씨는 얼마 전 중고로 산 디지털카메라로 높은 감도에 더 많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1인 가구 연작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삼각대나 보조광 없이 촬영하고 있다. 독학으로 배웠기에 심규동의 사진은 정형화되지 않고 앵글도 자유롭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수십 년간 취미처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부담 없이 그리고 재미있게.

2024 온빛씰리상 수상자 '1인가구 프로젝트'의 사진가 심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