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오상욱 선수가 2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깨물어보이고 있다. 왼쪽은 은메달을 수상한 튀니지의 파레스 페르자니 선수, 오른쪽은 동메달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루이지 지멜리. /뉴스1

‘메달 세리머니~ 플리즈!’

지난 2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 펜싱경기장에서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시상식이 열린 가운데 시상대 앞 풍경이 기자의 눈에 보이는듯하다.

이날 금메달을 딴 대한민국 오상욱 선수와 은메달 튀니지 페르야니(왼쪽), 동메달 이탈리아 사멜레 선수가 함께 메달을 입에 대고 깨무는 포즈를 취했다. ‘금메달 깨물기’ 세리머니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일반 대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모든 스포츠맨이 한 번쯤 꿈꾸는 장면일 것이다.

‘메달 깨물기’ 세리머니는 언제부터, 왜 시작했을까? 누가 시킨 걸까? 정답은 알 수 없다. 그저 다양한 설 만 난무하고 있다.

지난 7월 29일(현지시각) 프랑스 샤토루 사격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10m 공기 소총 여자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물고 있는 한국의 반효진 선수의 모습. 이 사진에 금메달을 물고 있는 각국 선수들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사진=로이터 뉴스1. 편집=남강호 기자

가장 그럴듯한 추정은 사진기자들의 요구에서 시작됐다는 설이다.

데이비드 월레친스키 ‘국제 올림픽 역사학자 소사이어티’(ISOH) 회장이 2016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메달로 할 수 있는 세리머니가 그리 많지 않다”며 “기분 좋아진 금메달리스트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메달을 깨무는 동작을 취해준 것 같다”고 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전 유도 선수 김재범은 “사진기자들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깨물었다”고 했다.

움직임이 없는 시상식에서 짧게는 10초, 길게는 몇 시간이 넘는 스포츠경기를 한장의 이미지로 결과를 전달하는 방법으로써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 어차피 정해진 지면에 들어갈 사진은 메달을 목에 걸고 서 있거나 국기에 대한 경례 정도 밖에 없었을 테니.

사진기자 입장에서 변명해 보자면, 그 짧지만 별 움직임이 없는 시상식에서 사진기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10m가 넘는 전방의 메달리스트들과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 수 없다. 그나마 모국어가 들리면 그쪽을 보게 되는 사람의 심리 때문에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할 때도 있고, 프레스 프렌들리(?) 하지 않은 메달리스트도 많기 때문에 포즈를 취하지 않거나 순식간에 포즈를 취하고 돌아서는 메달리스트 또한 많이 있다. 그 짧은 순간 가장 깔끔(?)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진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메달 깨물기’만큼 표정과 재미있는 상황이 나올 수가 없다. 하다못해 표정이 굳어 있어도 입을 벌리면 치아가 보이면서 웃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요즘은 대회 관계자가 사진기자 쪽을 가리키며 포즈를 취하라고 코치도 해준다. 그것도 그날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진짜 행운(?)이다.

지난 28일(현지시각) 2024 파리 올림픽 슬라럼 카누 여자 카약 싱글 우승 시상식에서 호주의 제시카 폭스가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로이터 뉴스1

또 다른 견해도 있다.

금은 다른 금속보다 약해 이로 물면 금방 자국이 남는다. 신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치아로 금의 질을 검사하던 고대의 관습을 따른다는 해석도 있다. 진짜 금인지, 가짜 금인지 확인해보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을 테니.

하지만 금메달 성분을 알면 신빙성이 확 떨어진다. 최근 50년 동안 치러진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색깔만 금’이었다.

지난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에 포함된 실제 금 비율은 1%(6g) 남짓하다. 나머지 93%는 은이고 6%가 동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포함된 비율 역시 금 6g과 은 550g이 들어 있었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에는 금 6g과 은 523g, 에펠탑 철 18g이 들어 있다. 에펠탑 철은 보수공사 때 떼어낸 철 조각들로 선수들이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일부를 조금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가 더해졌다고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에는 금메달이 순도 92.5% 이상의 은에 6g 이상의 금을 도금한다고 되어 있다. 실제 올림픽 금메달은 100% 순금이 아니기 때문에 깨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워낙 단단해서 깨물어도 자국이 남지 않는다.

메달의 금 함량이 준 것은 2차 대전 이후로 알려졌다. 금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지난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1908년 런던 올림픽,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금메달은 ‘100% 순금’으로 제작됐다. 다만, 이들 메달의 크기는 작았다. 그때는 금인지 확인하려고 치아로 깨물어봤을 수도 있었겠다. 그 시절 사진기자들은 그런 연출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니.

2024 파리올림픽 메달. 금·은·동 앞면 디자인은 가운데 금메달 모습처럼 공통적으로 에펠탑 조각이 들어가 있고, 올림픽(오른쪽)과 페럴림픽(왼쪽)의 메달은 뒷면과 목줄의 색깔로 구분된다. /파리 올림픽 홈페이지

0.1mm, 0.001초의 승부. 이번 올림픽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명승부가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흘린 지난 수년간의 땀과 눈물이 메달 색깔로 평가 되는 것 보다는 저 밝은 미소와 함께 그들의 스포츠맨십을 전 세계가 나누는 파리올림픽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