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대전운전면허시험장 강의실에서 한 고령운전자가 인지능력자가진단 검사를 받고 있다./신현종 기자

김병헌(79)씨는 최근 속상한 일이 많다. 얼마 전 골목길 운전 중 마주 오는 차에게 길을 비켜주다 뒤차와 부딪히는 접촉사고를 냈다. 맞닥뜨린 차를 배려한 행동이었지만 바로 뒤따라 온 차를 미처 인식하지 못한 탓이었다. 안전 운전을 늘 다짐하지만 며칠 전에는 늦은 시간 귀가하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그냥 지나쳐 과태료도 물었다. 예전 같으면 잘 하지 않을 실수를 반복하자 이 모든 것이 나이 탓인가 싶어 우울하기만 하다.

지난 3일 대전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송장섭씨(82)는 온 신경을 모니터에 쏟고 있다. 모니터에 나온 이미지 중 상황에 맞는 것을 터치하는 인지능력 자가진단을 받고 있는 중이다. 도로교통법상 만 75세 이상이면 3가지의 적성검사를 통과해야 운전면허 갱신이 가능하다. 건강검진과 치매 선별검사는 이미 받았으니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인지능력자가진단은 교통표지판이나 방향표지판을 기억하는 정도와 운전 중 주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움직이는 사물을 잘 탐색하여 반응하는 지를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검사다. 송씨가 최종적으로 받아 본 결과지에는 모든 검사 수치가 우수로 나왔지만 예전에는 채 5초도 걸리지 않던 문제에서 선뜻 반응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고령운전자의 면허증 갱신은 여러모로 번거롭지만 아직은 운전을 놓을 수가 없다.

“장거리 운전은 피하고 있고 평소 마을에서도 서행을 하며 안전운전에 늘 힘쓰고 있다”는 송씨는 “시골에서는 버스 편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자전거로는 농자재를 싣고 나르기가 어려워 차가 필수”임을 강조했다.

최근 연이은 고령 운전자 사고가 보도되면서 고령 운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일부에서는 초고령 운전자들의 강제 면허반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나이가 들면 인지능력이 떨어져 대처능력이 저하되는 게 사실이지만 나이만을 기준으로 개개인의 신체능력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3일 대전운전면허시험장 강의실에서 75세 이상 운전자들이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신현종 기자

그렇다고 고령운전자의 사고 위험성을 마냥 지켜볼 수만도 없다. 그 중 하나의 대안으로 고령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면허를 반납하는 것을 독려하는 제도가 시행중이다. 만65세 이상의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지자체 별로 10~30만원 정도의 교통카드나 지역화폐, 상품권 등이 지급된다. 면허 반납 후 취소는 불가하며 다시 운전면허를 갖기 위해서는 1년이 경과한 후 시험을 통해서만 재취득이 가능하다. 면허 반납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관계자들은 운전 면허증 반납 같은 제도들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며 앞으로도 실질적인 제도 마련에 힘쓸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운전 자체를 제한하면 헌법에서도 보장중인 이동권에 제약을 받을 수 있고 실질적으로 교통체계가 미약한 농촌이나 섬 등에서는 생활에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도 면허증 반납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지능력검사를 강화해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거나 비상자동제어장치의 보급을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2022년 기준 신차의 약 90% 정도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탑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장치는 운전 중 1~1.5m 앞에 장애물이 있는 경우에는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거나 시속 8㎞ 미만의 속도로 부딪히도록 가속 자체를 억제한다.

보험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해 65세 이상 운전자 사고율은 4.57%로 65세 미만 운전자 사고율인 4.04% 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노인의 연령별 사고율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오히려 80대 이상이 사고율이 가장 낮다. 운전자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겠지만 나이와 사고율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반증도 된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 사회에 접어들었고, 2025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 고령 운전의 문제가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다 같이 안전하게 운전하고 이동할 수 있는 사회 규범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3일 대전운전면허시험장에서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이수 받은 한 어르신이 시뮬레이터로 주행 연습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