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6도의 날씨를 보인 26일 저녁 서울 여의도공원에는 얇고 가벼운 차림의 청년 60여 명이 모여 몸을 풀고 있었다. 이들은 몸을 가볍게 푼 뒤 줄지어 뛰기 시작했다. 이 중 일부는 여의도공원에서 출발해 마포대교와 원효대교를 건너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돌아오는 약 7.7km의 코스를 40여 분 만에 달렸다. 한강 위를 달리는 러너들의 표정은 밝고 신나 보였다.
해당 러닝 크루는 20~40대 직장인으로 구성돼 있다. 마케터, 재활치료사, 상담원, 외국계 제약회사 직원, 크리에이터 등 직업군도 다양했다. 퇴근하고 친구들과 회포를 풀기도 부족한 시간에 아니면 집에서 푹 쉬어도 모자란 황금 같은 금요일에, 이들은 어떤 이유로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뛰는 걸까?
기획자 최윤희(27) 씨는 “러닝하고 나면 ‘나 오늘 한 건 했다’는 성취감이 든다”며 “같이 땀 흘리며 뛰니 러너들과 친밀감도 생기고 운동이 재밌다”고 말했다.
이수환(30) 씨는 “불현듯 찾아온 공황장애로 일상에 사소한 어려움을 겪던 중 우연히 러닝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극복한다는 내용을 접하고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며 “매일 5~7km를 달리다 보니 정신과 몸이 건강해졌다. 삶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마라토너가 됐다.
장애인직업생활상담원 박종환(26) 씨는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찬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상쾌하고 생동감이 느껴져 자주 뛰게 된다”며 “오는 4월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서울하프마라톤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러닝메이트인 임보라, 한송이, 류연화 씨는 원래 서로 모르는 관계였다. 하지만 러닝 크루에서 달리면서 친해졌고, 지금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 이들은 “우리에게 러닝이 가장 재밌는 놀이”라며 “러닝하는 날이면 퇴근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여의도공원, 반포 잠수교, 남산, 한강공원 등 서울 곳곳을 뛴다.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니다. 가끔 자전거도 타고, 등산도 하고, 심지어 연탄 나르기 같은 봉사 활동도 한다. 이러한 러닝 크루가 서울 뿐 아니라 지방에도 다수 존재한다. 소셜미디어에 ‘러닝’을 검색하면 341만 개, ‘런스타그램’을 검색하면 114만 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본인의 삶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며 서로 소통하는 문화 덕분에 러닝이 유행세를 탄 것으로 풀이 된다. 언제부턴가 러닝은 MZ 세대에게 ‘건강한 놀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