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대전 서구 가장동의 가로수들이 털실로 짠 다양한 뜨개옷을 입고 있다. 뜨개옷 위에는 시민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문구도 함께 적혀 있다. /신현종 기자

겨울이면 가지만이 남아 쓸쓸함을 더하던 도시의 가로수들이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예로부터 겨울이 되면 나무의 월동을 위해 나무 기둥에 볏짚을 둘러줬는데, 해충을 유인하기 위한 이 같은 목적의 나무 보온재를 ‘잠복소(潛伏所)’라 한다. 잠복소는 찬바람을 막아 나무의 보온을 유지하고 벌레에게는 따뜻한 환경을 제공, 유인한 후 불태우기 위해 설치한다.

이전에는 잠복소가 볏단이나 새끼를 감아 주는 것이 주였다면 지금의 잠복소는 예쁜 털실을 사용한다. 이처럼 나무나 동상, 기둥 같은 공공시설물에 털실로 덮개를 씌우는 것을 ‘그래피트 니팅(Graffiti Knitting)’라 부른다. 2005년 미국 텍사스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친환경 거리 예술로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철 가로수에 뜨개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대중화 됐다. 그래피티 니팅을 통해 가로수들은 화려한 옷을 입게 되고 그 길을 걷게 되는 관광객과 시민들은 이색적인 볼거리와 함께 추억도 쌓게 된다. 설치하고자 하는 공공시설물이 있으면 관련 자치구에 승인을 얻은 후 그래피티 니팅을 진행할 수 있다.

지난 1일 대전 서구 가장동의 가로수들이 털실로 짠 다양한 뜨개옷을 입고 있다. 뜨개옷 위에는 시민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문구도 함께 적혀 있다. /신현종 기자

잠복소의 효용에 대해서는 과거와는 달리 반대의 의견이 많아 한동안은 설치하지 않는 것이 추세였다. 나무의 극히 일부만을 감싸는 잠복소의 특성상 나무의 보온을 유지해 주는 기능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해충 방제의 역할 또한 크지 않았다. 해충의 감소(솔나방, 미국흰불나방 등)로 방제 대상 자체가 사라졌고 수거된 잠복소에는 오히려 해충의 천적인 거미만이 살고 있었기에 천적제거로 인한 피해가 더 컸던 것이다. 지금의 그래피티 니팅은 잠복소의 역할보다는 내가 사는 거리를 멋지게 꾸미는데 목적이 있기에, 잠복소의 뜨개옷도 재활용을 하는 경우가 많고 함께하는 분들도 재능 기부나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참여하고 있다.

뜨개옷을 입은 대전 서구 가장동 가로수길을 걷던 이숙자(56)씨는 “예전에는 이 길을 지날 때 바쁘게 걸으며 집에 갈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단장된 가로수들을 보니 뭔가 여유가 생기는 거 같다.”며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나무에 옷을 입히는 목적은 바뀌었어도 겨울철 거리에서 손으로 한 땀 한 땀 완성한 뜨개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이 도심의 풍경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지난 1일 대전 서구 가장동의 가로수들이 털실로 짠 다양한 뜨개옷을 입고 있다. 뜨개옷 위에는 시민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문구도 함께 적혀 있다. /신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