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 인적이 드문 충남 논산시 채운면의 황금 들녘을 한 어르신이 바삐 걷고 있다. 수확을 앞둔 벼를 돌보기 위해서다. 47년생인 류지현씨는 대전 집에서 논산 경작지까지 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
류씨는 자신의 논에서 수확한 쌀의 일부를 항상 어려운 이웃과 나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이 나눔이 올해로 벌써 23년째다. 매년 20kg 백미 100포대를 거주지인 대전 서구 유천동 주민센터에 기증한다. 기증된 쌀은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전달된다.
류씨가 나눔을 결심하게 된 건 큰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큰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 수확한 쌀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셨다. 배를 곯는 이가 많던 시절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자란 류씨는 언젠가는 자신도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 처음 쌀 100포대를 이웃에 기증 하겠다 선언 했을 때는 가족의 반대도 있었다. 기증을 시작한 후 단 한 해도 멈추지 않고 뜻을 이어가자 가족들도 곧 류씨를 따랐다.
류씨에게 나눔을 시작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웃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다보니 미처 쌀을 받지 못한 분들이 선정 기준에 대한 항의를 해오거나, 다른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미약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도 제법 많아 언제까지 농사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농부로 살아온 만큼 이제는 일을 그만 두고 편히 쉬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바람도 있지만, 가만히 쉬고 있으면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는 류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6시에 논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