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통리5일장의 한 좌판에 여러 곡들이 담긴 USB가 판매되고 있다. 이 노래들은 모두 저작권료를 지불한 정식 음원으로 최근의 트로트 열풍에 힘입어 트로트 앨범이 판매량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신현종 기자

해발 700여m 강원도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 한가롭던 길이 금세 천막의 물결로 뒤덮이고 여유롭던 주차장에는 차들이 넘쳐난다. 바로 통리 5일장의 풍경이다. 통리장은 강원도 태백시 통리재길에서 열리는 전통 장으로 동해 북평장에 이어 강원도에서는 2번째로 큰 장이다. 삼척과 울진을 잇는 산골 마을에 이처럼 큰 장이 열리게 된 이유는 과거 통리가 대형 광업소 3개가 밀집되어 있는 국내 대표 탄광촌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에 통리역이 생기면서 주변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레 장이 형성됐다.

통리 5일장은 이름과 달리 실은 매달 5일, 15일, 25일에 열리는 10일 장이다. 통리장은 산속에서 열리는 장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동해나 삼척에서 가져온 해산물이 많아 어물전이 유명하다. 길게 늘어선 어물전을 살펴보면 즉석으로 만들어진 튜브 수조를 헤엄쳐 다니는 고등어나 복어 등, 흔치 않은 활어까지도 만날 수 있다. 천막아래 펼쳐진 난전에는 아직도 대야에 담겨져 판매되고 있는 검정, 노랑 고무줄이 있고 시간을 돌려놓은 듯 쥐약을 판매하는 리어카도 있다.

이런 전통적인 5일장의 풍경 속에서 변화된 세월의 면모를 느끼게 하는 것들도 있다. 바로 장에 온 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 앨범을 판매하는 좌판이다. 손님들을 호객하듯 흥겨운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USB에 담겨 있는 각종 앨범들이 등장한다. 과거 테이프에 담겨 판매되던 모습은 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다. 동해의 북평장, 양양장, 울진장, 태백 통리장 등을 돌며 트로트 앨범을 판매하고 있는 상인 전호섭씨는 주변 대다수의 광업소가 폐광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지난 25일, 통리5일장에 펼쳐진 낫과 호미 등의 농기구와 식도를 파는 좌판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신현종 기자

“최근 전통 장에서의 주 소비층은 어르신 들 뿐입니다. 젊은이가 없는 상권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그나마 남아 있던 장성과 도계 광업소도 곧 없어진다고 하니 걱정이 많습니다. 다른 상인들 보다 다행히도 저는 미스·미스터 트롯이 가져온 트로트 열풍 덕분에 벌이가 훨씬 나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전통 장에서 오랜 기간 과일을 팔아 온 상인 강민석씨도 옛날 통리장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예전에는 통리장에서 장사를 하면 저녁에는 코 안이 석탄재로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그만큼 광업이 활발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광부들이 떠나고 예전의 단골 어르신 분들도 노환 등으로 보이시질 않습니다. 전통장의 풍경을 찾아 관광을 오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그들이 소비하는 건 먹거리뿐입니다. 예전에는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면 시커메진 코 안이 싫었는데 이젠 이상하게 그 풍경이 그립습니다.”

상인들의 말대로 정부는 올 해 전남 화순광업소를 시작으로 2024년에는 강원 태백 장성광업소, 2025년 강원 삼척 도계광업소 등 석탄공사가 운영 중인 탄광을 모두 폐광할 방침이다.

이처럼 광산 근로자들이 일터가 모두 사라져 감에 따라 그들이 더 이상 지역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됐다. 소멸해 가는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체산업 육성 등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난 25일, 통리5일장의 한 좌판에 놓여있는 생선을 다듬는 오래 된 도마가 장터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하다. /신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