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광고, 인물 사진가로 탁월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진가 김용호가 40년간의 사진작업을 모아 책'포토랭귀지(몽스북)'으로 냈다. 1일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김용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들려주었다. 2022년 7월 1일./ 조인원 기자

양복을 입은 호랑이가 광화문 앞을 걷고 있다. 손에는 튤립 한 다발과 우주인 인형을 들고 배회하던 호랑이가 우연히 마주친 한복 입은 소녀들에게 다가가지만 놀라서 도망간다. 경복궁 안도 찾는 사람들이 없어 텅 비어있다. 봄바람이 꽃잎을 흔들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호랑이는 다시 만난 소녀들과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어울린다.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호랑이 가면을 쓴 남자가 꽃과 인형을 들고 있다? 이런 모습에 어떻게 눈길이 가지 않을까. 세피아 톤의 흑백사진들이 꿈속 장면처럼 낯설다. 그런데도 고궁과 꽃, 호랑이와 정장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묘하게 어울린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오래 보게 하려면 미스터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긴, 김용호가 아니면 누가 호랑이한테 양복을 입히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2022. 코로나 팬데믹에서 새해를 맞아 호랑이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극복할까를 상상하면서 전래동화에 착안해서 구성한 김용호의 연작 사진.이다.

흑백의 연작 사진들은 사진가 김용호가 호랑이의 해를 맞은 올해 한 잡지 창간호로 발표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3년째 이어지며 새해가 밝았지만, 용맹한 호랑이는 어떻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할까를 상상하며 제작했다. 외롭고 소외된 현실일수록 이웃과 도와가며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다. 범이 나오는 우리 전래동화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0년 전 여름, 필자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 있는 사진기자실로 출퇴근하며 정치 뉴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채색 양복을 입은 정치인들이 지겹도록 만나는 주요 피사체였다. 당시 집에서 지하철 9호선으로 국회의사당역을 내려 출퇴근했는데 어느 날 지하철 역사 벽에 걸린 광고 사진들이 눈에 들어와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고 봤다.

하얀 식탁 위에 파티 복장의 멋진 남녀의 손. 마주한 두 사람의 손 주변에는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잔뜩 놓여있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물건들은 이상하게 눈이 간다. 은제 물고기 형상, 칼로 자른 소시지, 굴 껍데기 속 진주와 석류, 잘린 꽃잎, 로봇 장난감 등. 저마다 의미를 던지는 사물들은 알아서 보라는 식으로 어지럽게 있고 가운데에는 신용카드 한 장이 보였다. 김용호의 ‘우아한 인생’이라는 현대카드 광고사진이었다.

- 우아한 인생(La dolce vita), 2012. 현대카드 광고. 현대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식탁 위에 어지럽게 있고 가운데엔 카드 한 장이 있다. 20장의 연작 사진으로 구성된 이 광고 사진들은 당시 상업 화랑 초청으로 전시까지 되었다.

콘티나 시안 없이 혼자 구상한 사진가는 스스로 가져온 소품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즉흥적으로 촬영했다고 했다. 광고사진 속 물고기는 생존 욕구를, 굴이나 소시지는 현대인의 성적 욕망을, 꽃은 유혹이나 구애를, 로봇 장난감은 획일화된 현대인을 상징했다. 이 사진들은 당시 광고가 나갈 때 한 상업 화랑의 요청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미디어 광고 캠페인이 끝나기도 전에 작품 전시를 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아한 인생’ 시리즈는 20여 점의 사진과 비디오 작품으로도 남아있다.

40년간 패션, 자동차, 인물, 파인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을 찍어온 김용호를 지난 1일 서울 반포의 사진가 사무실을 찾아가 만났다. 최근에 사진가가 40년간 찍은 사진들을 모아 낸 책 <포토랭귀지(몽스북)>을 보고 약속을 잡았다. 무엇보다 기이하고 낯선 오브제들을 어떻게 구상해서 시선을 끄는 사진을 찍는가가 궁금했다. 인터뷰는 그동안 사진가가 작업한 패션과 인물 사진들을 중심으로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약속한 지인이 사고로 기차가 연착되면서 두 시간 늦게 온다며 예정보다 2배 넘게 시간을 할애했다.

40년간 패션, 자동차, 인물, 파인아트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다양한 사진을 찍어온 사진가 김용호를 인터뷰했다./조인원 기자

사진 작업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 어릴 때 다른 사람처럼 그냥 주변에 있는 사람 찍고 그랬습니다. 제대로 시작한 것은 1982년에 하리케인이라는 작은 패션회사에서 광고 담당으로 일했는데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당시 인천 차이나타운은 홍콩의 거리처럼 되게 근사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몰랐죠. 중소기업 패션 회사에서 광고 담당이라 디자인도 하고 사진까지 직접 찍었습니다. 당시 의류광고는 카탈로그를 주로 제작했는데 그때 제가 카탈로그 사진을 완전히 새롭게 찍으면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당시엔 의류광고가 모델들이 고급호텔 앞에서 찍던 시절이라 인천 차이나타운을 가서 홍콩 분위기가 나게 촬영했습니다. 외국 가기가 힘든 시절이어서 이국적인 배경의 패션사진이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 김용호는 1985년 패션회사인 하리케인 광고 담당이었는데 직접 모델들을 데리고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아 이 사진들을 찍고 캐털로그에 실었다. 당시 대부분의 패션광고는 호텔이나 화려한 배경에서 촬영되었는데, 사진가는 역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차이나타운에서 촬영해서 커다란 반응을 얻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의 작업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상했나요?

- 20여 년 전에 미키마우스 작업을 한 것을 참고해서 준비했습니다. 올해가 호랑이 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죠. 중요한 것은 빤한 것이 아니라 미스터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진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봅니다.

사진을 궁금하게 만든다고요?

- 사진을 보고 바로 알면 재미없지 않나요, 빤하니까. 뜬금없이 호랑이가 양복을 입고 경복궁에 나타난다는 설정만 해도, “뭐야, 이거?”하고 궁금해지죠. 궁금하면 관심을 갖습니다. 스토리텔링도 이야기로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겁니다. 현대카드 사진들도 두 남녀가 이런 사치스러운 곳에서 무엇을 할까, 카드 한 장을 놓고 밥값 계산은 누가 할까 등 궁금하게 만든 겁니다. 거기 나오는 오브제들도 하나하나가 모두 상징이 있습니다. 소시지는 남근을 상징하고, 물고기는 활력과 다산을, 굴과 석류는 남녀의 욕망을, 로봇 장난감은 획일화된 직장인을 말합니다.

광고는 원래 사람들이 보면 금방 알 수 있도록 만들지 않나요?

- 필요하면 저도 그렇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소품과 스타일링을 전부 혼자 준비해서 찍었습니다. 예쁘게 찍으려고 했다면 이렇게 배치하지 않았을 겁니다. 시안 없이 파인아트 형식으로 혼자해서 1주일 만에 이런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신문광고에는 사진 옆에 제 이름까지 나갔죠. 결국 다양한 경험들이 이런 사진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전시장도 안가고 그랬다면 이런 사진이 나올 수 없죠.

- 우아한 인생(La dolce vita), 2012. 현대카드 광고. 현대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식탁 위에 어지럽게 있고 가운데엔 카드 한 장이 있다. 20장의 연작 사진으로 구성된 이 광고 사진들은 당시 상업 화랑 초청으로 전시까지 되었다.

김용호 사진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링이라고 했습니다. 광고나 인물 사진에서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고 구상하나요?

- 촬영을 앞두고 모든 자료를 다 찾아봅니다. 2002년 즈음 백남준 선생을 촬영하기 전에 모든 자료를 다 읽고 만났습니다. 촬영시간이 2시간만 주어져 선생님이 표현한 작품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다른 것이 또 있나를 준비하고 찾아갔습니다. 평소에 많은 자료를 축적해 놓고, 주말에는 공예전시장이나 미디어아트, 공연장 등을 찾아다닙니다.

사진가인데도 공예나 다른 분야의 전시를 봐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 사진가들이 사진 안에만 갇혀있습니다. 어차피 내가 사는 세상을 담는 것이 사진입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야기가 섞입니다. 여기에도 보면 바닷가에 뜬금없이 현대차를 갖다 놓고 찍기도 했습니다.

다른 분야들을 봐두는 게 창의적인 사진을 위해 왜 필요한가요?

- 사진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아름다움에는 뭐든 이유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지나가는데 멋지다고 하면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좋은 발걸음을 가졌거나 아니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좋은 옷을 입었든지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알아놓으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표현됩니다.

- 김용호의 현대차 광고, 현대차가 2012년 브랜드캠페인의 콘셉트로 잡은 “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개인의 삶을 빛나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한 소녀가 장난감 미니카를 갖고 놀며 자동차를 타고 파티에 가는 꿈을 꾸는 스토리로 구성해서 인쇄 매체 광고로 제작했다.

계속 다른 분야 쪽으로 접목하는 노력이 사진가들에게 필요하나요?

- 굳이 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죠. 하지만 제 스타일로 해본다면 얻는 게 달라지겠죠. 사람은 물리적으로 얻을 수는 정보는 한계가 있잖아요. 사람마다 나름대로 얻는 정보를 모아서 하다 보면 전혀 다른 생각들이 나타나죠.

패션 사진뿐 아니라 광고나 영화출연 설치미술까지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 특별히 벗어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필요해서 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계속하면서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로봇도 인터넷으로 수강해서 만든 겁니다. 조각가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계속할 생각도 없습니다. 공공미술로 만들면서 설치미술가가 되고, 소설도 썼으니 소설가로도 소개되기도 하고요, 하하. 사진만 해서 최고가 될 수도 있지만, 사진 때문에 확장성이 없을 수 있습니다.

- 설치미술, 김용호가 2013년에 제작한 아트토이 ‘모던보이’. 세라믹에 전구를 꽂아 한국의 중년남성을 표현했다.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에서 전시했고, 몸체와 전구를 약간씩 변형해서 작가들과 협업한 작품들이 판매용으로도 나와 있다.

다른 분야 사진은 어떤 건가요? 원래 하시던 패션 사진 말고.

- 공연, 미술, 파인아트, 다양한 사람들이 있죠. 예를 들어서 공연 발레부터 현대무용부터 국악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찍기 위해 공연을 보거나 미리 관련된 책을 전부 읽습니다. 최근 작업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있어요. 경기아트센터의 전속인데 거기랑 같이하면서 가수들의 노래를 내가 사진으로 담았어요. 그쪽에서 처음에 원했던 건 내가 촬영한 사계절 작품을 그냥 배경으로 쓰겠다는 거였어요. ‘사계의 노래’인데 6명의 노래하는 사람들이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신이 어느 노래를 선택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거였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들의 표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공연 예술 무대를 많이 가보면 미디어아트가 대세라 K-pop이든 뭐든 현란한 무대에 조명과 그림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미디어가 대세라고 해도 그런 현란한 모습에만 빠져서 정작 주인공이 잘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노래 부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수들을 찍어서 화면에 아주 크게 확대한다면 관객들은 인물에 주목할 수가 있다고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렇게 찍고 영상을 편집해서 확대했더니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 강수진/ 2007, 월간 객석 표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온 기사에서 무용가의 손가락만으로 루돌프 뿔을 재현했다. 객석의 표지 모델은 대부분 음악가나 무용가가 대부분이라 말이 없어서 김용호는 “연주할 때나 공연할 때 느낌으로 표현해 달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가끔 있지 않나요? 그럴 때는 어떻게 설득을 하시거나 아니면 내 생각을 수정하든지 하신 적은 없나요?

- 수정하든, 우회하든, 싸우든, 화를 내든 했겠죠. 작년에 어떤 프로젝트 할 때 화상회의를 했는데 화상이다 보니 서로 이야기를 제대로 못 하잖아요. 그래서 다툰 적도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클라이언트한테 화를 내기도 했죠. 일하는데 당신이 이렇게 준비 안 해주면 내가 어떻게 일하냐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가르치는 식으로 말을 했거나 나의 오만감이 너무 넘쳤거나 했던 건 가슴 아픈 일이죠. 그래서 책 서두에 사진가들에게 예의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쓴 겁니다. 내가 그렇게 못해서.

하지만 한편으로 그동안 예의 지키면서 배려했다면 과연 그런 결과들이 나왔을까도 생각해봅니다. 예의 갖추고, 확인받고, 상의했다면 이런 게 또 나왔을까, 일단 내 멋대로 한번 해보자고 저지른 모험이 작품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작도 결국 공부가 필요한 거네요?

- 공부가 없으면 창작을 못 하죠. 사진 잘 찍는 공부는 당연하고, 사진 잘 찍으려고 365일 카메라만 들고 다니기보다 단 하루 카메라를 들더라도 364일을 철학 공부를 하다 보면 하루 카메라 드는 날이 달라질 거예요.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면 순발력이나 짧은 순간에 프레이밍을 결정하는 능력은 향상되겠지만, 철학적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 다른 걸 볼 수 있고 크리에이티브한 걸 만들 수 있습니다.

- 이어령, 2022. 개인 작업.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설득하여 마지막 모습을 촬영했다. 처음 김용호가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사진이 더 필요 없다고 했던 이어령 교수는 나중에 “늙고 추하게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아름답게 찍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공부라는 건 아까 말씀하신 새로운 미술 분야나 음악도 되고 다 되나요.

- 그렇죠. 영화나 공연, 전시 뭐든 철학적 메시지가 있는 것들이 다 성공한 것들이죠.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나 눈길을 끌기 위해선 사진에서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 무엇보다 새로움과 미스터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선 새롭다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도 이갑철의 사진을 보면 새롭지 않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설명하는 것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의 철학적 세계가 담기니까 이런 사진들이 나오는 겁니다. 그냥 찍는 사람들한테는 이 꽃이 크게 나오지 않고 할머니만 크게 찍었네 라고 생각하겠지만, 순간적으로 꽃과 구름과 인물을 작게 찍을 때 이갑철은 대상을 보는 철학적 사고가 집중된 거죠. 특이한 차이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사진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는 사진이 나온 겁니다.

또 하나는 미스터리입니다. 이 사진들 보면 되게 미스터리해요. 저는 그것이 도대체 이 할머니 뭐라고 하고 있을까 이곳이 뭘까 그러니까 구름과 할머니는 어떤 관계일까, 사람들은 안 바뀐 걸 봤을 때 궁금하고 호기심이 좀 있고 미스터리함을 느끼죠.

- 김용호의 현대차 광고사진, 현대차가 2012년 브랜드캠페인의 콘셉트로 잡은 “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개인의 삶을 빛나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한 소녀가 장난감 미니카를 갖고 놀며 자동차를 타고 파티에 가는 꿈을 꾸는 스토리로 구성해서 인쇄 매체 광고로 제작했다.

하지만 개인 작업을 하시는 이갑철 사진가와 다르게 광고나 패션사진은 사람들의 반응이나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지 않나요?

- 결국 맥락은 같습니다. 상업사진도 클라이언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우선 듣고 그 이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클라이언트가 상품을 예쁘게 보여주고 싶다면 거기에다 나는 이 상품이 가진 여러 사회적 의미들을 찾고 만들어서 지금껏 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사진을 만드는 겁니다.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나오기 위해 어떤 것이 또 필요한가요?

- 지금 작업에 대한 불만족입니다. 내 이전에 했던 사람에 대한 불만족, 내 작업에 대한 불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새로움이 없습니다. 내 부족함에 대한 불만과 반성 이런 것들이 계속 쌓여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창작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더 좋은 게 없을까, 세상이 안 봤던 걸 보여주고 싶다, 내가 찍은 거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달라야 한다. 달라야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창조고, 창조의 시작은 거기 있습니다. 남들이 서서 찍으면 백남준을 찍을 때처럼 나는 휠체어 타고 앉아 찍기도 하고.

예쁜 거를 예쁘게 찍는 건 당연하지만, 평범한 것을 예쁘게 찍는 게 어렵지 않습니까, 인물의 개성을 끌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 어렵지만 저는 상대를 많이 연구합니다. 미리 연락 오면 가족관계를 조사해서 인터뷰하면서, “따님이 이번에 결혼하신다고요?”라고 물으며 상대와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 풀어갑니다.

사실 사진을 찍히는 건 되게 불편한 일이죠. 그래서 취미가 뭔지 묻기도 하면서 대화합니다. 돌아가신 LG 구본무 회장님이 계실 때 여의도 트윈타워 빌딩 사무실에서 초대형 망원경으로 밤섬을 관찰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갔습니다. 그런 사전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풀어나갑니다. 촬영하기 며칠 전에 가서 미리 장소 정하고 대역으로 조명 테스트도 하고 미리 다 준비하죠. 그러면 촬영 땐 한두 시간에 준비하고 옮겨서 착착 찍습니다.

배우 윤여정, 2009년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패션 잡지 ‘보그(Vogue)’의 화보 촬영을 위해 여배우들이 사진 스튜디오에 모여 나눈 이야기를 실제처럼 꾸민 영화로 사진가 김용호가 등장해서 연기하고 이런 사진도 촬영했다.

책 속에 그동안 찍으신 사진들을 보면 1930년대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이미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대부분 결정됐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구화되고 1,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양복을 입기 시작했죠. 생활양식들이 사실은 20세기 초에 결정되었죠. 기존 봉건 세력들이나 귀족들이 몰락하면서 새로운 모델인 모더니스트들이 탄생한 거죠. 그런데 우리는 당시를 일제 강점기에 받아들였고, 모더니즘을 일본을 통해서만 받아들인 거죠. 그 시대의 여러 일 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많은 사고나 형태가 그때 결정됐기에 그 공부가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아까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냥 공부가 아니라 왜 철학인가요?

- 철학이 없으면 창작도 없습니다.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철학이 있으면 그게 작품이 됩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 의 변기가 그냥 변기가 아니잖아요. 근데 그게 작품이 되는 이유는 철학이 있어서입니다. 기술이 중요해도 철학이 있으면 백 년도 갑니다. 초기의 개념미술이나 현대미술 작가들은 전부 철학자들입니다. 자기 철학을 펼치려면 많은 철학 공부가 필요합니다.

조성진, 허공에 피아노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연주해달라는 요청으로 촬영된 피아니스트 조성진, 손에 초점을 맞췄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스타일링 없이 인물만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오브제나 장식 없이도 개성을 드러나게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사진가 김용호는 말했다. /김용호 작가

철학이 있어야 울림이 있다고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철학인가요?

- 철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죠. 모든 학문의 기본은 철학이라고. 여러 철학 가운데 장자를 좋아합니다. 내가 누구냐고 장자의 ‘호접지몽’을 많이 이야기하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계속 나를 찾는 거죠. 기본적으로 철학 공부를 하면은 내가 보는 세상을 보는 것을 달리 볼 수가 있겠죠. 새롭게 보거나 진지하게 보거나 그렇게 되겠죠. 고민하게 되니까. 발전은 고민에 있잖아요. 불만족도 고민이거든요. 고민하게 만드는 게 철학이겠죠. 근본적인 질문들을 계속하는 거니까.

이게 직업과 연결되고 사진가의 자세와도 연결되나요?

- 고민이 없으면 창조가 없어요. 평범히 지나다니는 길들은 맨날 보고 있으면 그냥 그렇게 무리하고 단순한 인상이잖아요. 근데 만약에 출퇴근하는 어떤 사진가가 인천에서부터 1호선을 타고 아침에 북새통을 난리 치고 출퇴근하다 생각하고 그러다가 철학적 생각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러시아워를 찍는다 말이에요. 위에서 찍고 밀려서 못하는 사람들 찍고 하다 보면 그게 하나의 작업이 되겠죠. 사실은 소재로 널려 있습니다. 안 했던 거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어요. 결국 바탕은 다 철학적 사고라고 해요.

패션, 광고, 인물 사진가로 탁월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진가 김용호가 40년간의 사진작업을 모아 책'포토랭귀지(몽스북)'으로 냈다. 1일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김용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들려주었다. 2022년 7월 1일./ 조인원 기자

아티스트들은 소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 경상도말로 ‘천지 삐까리’입니다. 생각만 달리하면 솔직히 소재가 널렸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은 다 널린 게 작품 소재예요. 남의 것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어요. 자기를 돌아보면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거죠. 현진건이나 이광수 같은 근대 소설은 다 사소설이에요. 내 가족이나 주변 이야기로 다 그렇게 시작됐거든요,

그런 주변의 평범함을 소재로 삼으면 대부분 ‘이거 안 될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 그렇게 하는 순간 벌써 창의력은 없어집니다.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요.

사진 촬영은 날씨도 달라지고, 당일 조명 상태, 현장의 상황 등 변수가 너무 많은데 그걸 통제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 이게 내가 실사 촬영을 했을 때 이 느낌이 날까 이런 걱정을 사실 많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시도하는 게 왜 중요합니까?

-그래도 해야죠. 김아타를 보세요. 김아타도 로댕갤러리 가서 처음 봤는데 그분이 나랑 나이가 같거든요. 그런데 애들 학비를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답니다. 그런 어려운 사진을 찍으면서 얼마나 고생했을까요. 수익도 없이 20년을 묵묵히 했는데 어쨌거나 다양한 놀라운 작업이 나왔잖아요. 법당에서 스님들이 아크릴 박스에 들어가는 것을 누가 생각을 했겠어요, 날씨가 좋을지, 모델은 또 어떻게 구할지 앉아서 고민만 했다면 아무것도 못 했겠죠. 어떻게 될지 몰라도 꾸준히 실행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유명해졌죠.

사진 좋아하는 분들께 좋은 사진 찍기 위한 더 쉬운 충고는 없을까요?

- 일단 카메라로 막 찍으세요. 막 찍다 보면 잘 찍습니다.

사진= 김용호(포토랭귀지/몽스북,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