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 쇼(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전반 2분 만에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오랜 꿈이 이뤄지는 듯했다.

“트로피가 로마로 왔다” - 유로 2020 챔피언 이탈리아가 12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안방에서 거둔 승리여서 의미가 컸다. 이탈리아는 2000년과 2012년 대회 준우승의 아쉬움을 씻고 1968년 이후 53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로이터 연합뉴스

12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을 찾은 관중 6만7000여명의 대다수를 차지한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팬들은 열광했다. 유로 2020이 막을 올리기 전부터 “축구가 집으로 온다”며 주문을 걸 듯 외쳤던 이들이었다. 유로 1996(잉글랜드 개최)을 앞두고 나왔던 응원가 ‘삼사자(Three Lions·잉글랜드 대표팀의 상징)’에 등장하는 이 가사가 25년 만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 유럽 축구선수권대회 창설 이후 처음 결승까지 내달렸던 잉글랜드(FIFA 랭킹 4위)는 안방에서 이탈리아(FIFA 7위)에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연장까지 1대1로 승패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3-2)까지 한 끝에 웃었다. 자국에서 치렀던 1968년 대회에서 우승하고 53년 만에 통산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로마로 가져간 트로피

루크 쇼의 선제 득점은 역대 결승전에서 가장 이른 시간에 터진 골(1분57초)이었다. 쇼는 키런 트리피어가 페널티박스 오른쪽 모서리 부근에서 대각선으로 띄운 크로스를 골 지역 왼쪽에서 마무리했다. 공이 바운드 되는 순간 왼 발등으로 강하게 때렸다. 땅볼 슈팅은 왼쪽 골 포스트를 맞고 골 그물을 갈랐다.

쇼는 16강전(독일)과 8강전(우크라이나)에서 총 3차례 어시스트를 하며 활력소 역할을 하더니, 만 26세 생일 전날 열린 결승에서 개인 통산 A매치(국가대항전) 1호 골까지 맛봤다.

이탈리아는 후반 22분 동점골을 뽑아냈다. 코너킥 상황에서 마르코 베라티의 헤딩슛을 잉글랜드 골키퍼가 가까스로 걷어내자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달려들며 밀어 넣었다. 만 34세 2개월인 수비수 보누치(유벤투스)는 유로 역대 결승전 최고령 득점자가 됐다. 그는 승부차기 승리 후 장내 카메라에 대고 영어로 “(트로피가) 로마로 온다!”고 포효했다.

최우수 선수 격인 ‘플레이어 오브 더 토너먼트’는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22)에게 돌아갔다. 그는 조별리그부터 7경기에 출전해 4골만 내줬고, 준결승전(스페인)과 결승전(잉글랜드) 승부차기에선 여러 차례 선방했다. 골키퍼가 유로 최우수 선수(1996년 도입)에 뽑힌 것은 처음이다. 돈나룸마는 역대 최연소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월드컵 통산 4번 우승한 이탈리아는 유로 우승도 2회로 늘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라는 수모도 씻었다. 2018년 10월부터 시작한 무패 행진은 34경기(27승7무)로 늘렸다. 2018년 5월 이탈리아 사령탑에 부임하고 3년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일군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놀라웠다.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승부차기 징크스에 울어

잉글랜드는 유로 1996 준결승에서 독일에 승부차기로 패배한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당시 유일하게 실축을 했던 선수가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결승전 연장 막판에 마커스 래시퍼드와 제이든 산초를 교체 투입해 승부차기를 대비했다. 하지만 승부차기 3번 키커로 나선 래시퍼드는 실축했고, 4번 키커 산초는 골키퍼에 막혔다. 5번 부카요 사카의 킥도 골키퍼에 읽혔다. 사카는 9월에 만 20세가 된다. 이날 전까지 ‘11m 룰렛'이라는 페널티킥은 프로 리그에서 해 본 적이 없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대표팀을 격려하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친서까지 받았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내가 키커 선정을 했다. 내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축구 통계전문사이트 옵타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역대 월드컵·유로의 승부차기 승률은 22%(9번 중 2번)로, 유럽팀 중 가장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