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가 위대한 선수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이야. 지난 18일(한국 시각) 오타니 쇼헤이(31·1994년생)는 메이저리그 야구(MLB)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NLCS) 4차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6이닝 무실점 10탈삼진. 1번 타자로 3타수 3안타 3홈런 1볼넷을 기록했다.
무슨 고교 야구도 아니고(한국은 물론, 일본 고교 야구에서도 투수가 3홈런을 치는 경우는 없었다)... 오타니에 근접한 기록은 2019년 4월 잭 그레인키(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보여준 바 있다. 선발투수로 나와 6이닝 3실점 10탈삼진에 타자로 2홈런을 때렸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MLB.com)는 이번 오타니 업적을 마그넘 오푸스(magnum opus)라고 칭했다. 경력 최고 정점 하이라이트란 의미다. 그리고 그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1.메이저리그 역사상 투수가 선두 타자 홈런을 친 건 처음
1회말 오타니는 선두 타자로 나와 홈런을 터뜨렸다. 투수가 선두 타자로 홈런을 친 건 MLB 사상 처음이다. 보통 거포들은 3번이나 4번 타자를 맡는 게 관행이었으나 최근 유행이 바뀌었다. 잘 치는 타자가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서는 게 팀에 이득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이젠 1번 타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오타니는 뭐래도 상관 없다. 지난해 만큼은 아니지만 올 시즌 도루(20개)가 팀 내 1위, 출루율(0.394)은 2위, 홈런·타점·볼넷·득점 모두 팀 내 1위다.
2.그래서 포스트시즌에 홈런 3개를 친 유일한 투수가 됐다. 포스트시즌 1경기 홈런 3개를 친 유일한 투수이기도 하다. MLB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홈런을 친 투수는 지금까지 22명 있었다. 밥 깁슨(1967년과 1968년)과 데이브 맥널리(1969년과 1970년)는 2개를 쳤다. 다만 2년에 걸쳐 친 것. 오타니처럼 한 해에 그것도 1경기에 3개를 친 선수는 당연히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규 시즌으로 따지면 1경기 2홈런을 친 투수는 꽤 있었다. 1966년 7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투수 토니 클로닝거는 1경기 2개 만루 홈런을 치기도 했다. 1971년 6월 필라델피아 필리스 투수 릭 와이스는 노히트노런 경기를 하면서 자신이 홈런 2개를 쳤다. 이것도 진귀한 기록이다.
1경기 3홈런을 친 투수도 과거에 있었다고 한다. 1942년 5월 짐 토빈(당시 보스턴 브레이브스)이 기록했다.
- 선두타자 홈런 친 투수
- 포스트시즌 홈런 3개 기록한 투수
- 투수로 10탈삼진, 타자로 2홈런(이상)을 친 건 이번이 MLB 역사 7번째다. 오타니는 이걸 두 번 이상 기록한 첫 선수다.
- 포스트시즌 경기 한 이닝에서 삼진 3개와 홈런 1개를 동시에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 이건 앞으로 또 나올 수도 있겠다. 오타니에게서.
- 포스트시즌 1경기 3홈런은 오타니가 이번에 MLB 통산 13번째로 기록했다. 최근 세 번은 모두 다저스 선수 작품이다. 2021년 크리스 테일러, 2017년 키케 에르난데스, 그리고 2025년 오타니.
- 이번에 오타니가 친 홈런 3개 타구 속도는 각각 116.5마일, 116.9마일(188.1㎞), 113.6마일. 스탯캐스트를 도입(2015년)해 타구 속도를 계산한 이후 한 경기에서 116마일 이상 홈런을 두 개 이상 친 선수는 최초다.
- 3개 홈런 중 가장 긴 건 469피트(약 143m). 오타니는 다저스스타디움에서만 450피트(137m) 이상 홈런 8개를 쳤다. 동료들 중 2개 이상 친 선수도 없다. 193㎝ 103㎏ 체격에서 나오는 비거리는 압도적이다.
MLB.com은 이날 오타니가 ‘야구라는 스포츠의 가능성’을 다시 쓴 날이라고 해석했다. 투타를 오가며 물리적·통계적·역사적 한계를 초월한 이 밤. 앞으로 오랫동안 “야구사(史) 최고의 경기”로 회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동감한다.
오타니가 이런 기록을 쓰기까진 동료들 조력도 한 몫 했다. 오타니가 7회 마운드에서 내려왔을 때 상황은 무사 1-2루. 공을 건네받은 알렉스 베시아(30)가 후속 타자들을 완벽하게(내야 뜬 공과 병살타) 막아줘 오타니 기록지는 무결점으로 남을 수 있었다. 대기록엔 거의 항상 보이지 않는 주위 도움이 있는 법이다.
원래 투수는 강판되면 경기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MLB는 ‘오타니 룰’을 새로 만들어 선택에 따라 타석에는 설 수 있게 했다. 그 덕도 봤다. 오타니는 이 경기 전까지 포스트시즌 직전 7경기에서 29타수 3안타. 삼진만 14개를 당하고 있었다. 그 부진을 한 번에, 그것도 너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털어버렸다.
세계 각국 중계진들도 “와우” “세상에” “이게 실화입니까” 같은 감탄사를 남발했다. 국내 중계진으로 합석한 김병현 전 MLB 투수는 세 번째 홈런이 터지는 순간 “설마” “안 돼”라면서 경악했다. “야구가 오타니를 위해 만들어진 거라 봐도 무방하겠다”고도 했다.
다저스 동료 무키 베츠는 “(오늘) 우리는 시카고 불스가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다음 말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오타니)는 마이클 조던이었다”.
오타니에게 이제 남은 건 올스타전 MVP, 월드시리즈 MVP, 사이영상 정도다. 일단 눈앞에 있는 건 월드시리즈다. 지난해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맛 보긴 했으니 개인적으론 5경기에서 타율 0.105에 무홈런 무타점, 부진했다. 그 치욕을 만회할 기회가 왔다.
사이영상은 투수로 전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지만 투타 겸업을 고집하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지금까지 오타니가 사이영상에 가장 근접했던 해는 2022년으로 15승 9패 166이닝 219탈삼진 평균자책점 2.33(타율 0.273 34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면서 사이영상 투표에서 아메리칸리그 4위(1위는 저스틴 벌랜더)를 차지한 바 있다. 이 해 오타니는 공교롭게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가 62홈런이란 또다른 신화를 쏘아올리면서 MVP도 저지에게 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