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 디아즈

MLB(메이저리그 야구)에서 최우수선수(MVP)와 투수 최고 영예인 ‘사이영상’ 등을 수여하는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2026년부터 AL(아메리칸리그)과 NL(내셔널리그)의 최고 구원투수를 선발해 시상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야구계는 이를 구원투수의 위상 변화를 실감케 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미 스포츠 매체 디애슬래틱은 “요즘 야구 팬은 ‘누가 선발투수인가’가 아닌 ‘시속 16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는 구원투수가 몇 명이나 나오나’에 더 큰 관심을 둔다”고 전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젠 선발투수보다 경기 중반 마운드에 올라 팀 승리를 이끄는 구원투수들의 전성기란 것이다.

최근 MLB나 국내 프로야구에서 선발투수들이 소화하는 이닝이 줄어들면서, 남은 이닝을 책임지는 구원투수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투수들이 더 빠른 공을 던질수록 부상 위험은 더 커지기 때문에 ‘관리 야구’가 대세가 된 것. 실제 MLB 투수들의 지난해 속구 평균 구속은 시속 94.3마일(151.7㎞)로 2008년 91.9마일(약 147.8㎞)보다 4㎞가량 빨라졌다. 반면 지난해 MLB에서 ‘이닝 이터(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투수)’를 상징하는 200이닝을 넘긴 선발투수는 단 4명뿐이었다. 20년 전인 2004년(41명)과 비교하면 10% 수준으로 줄었다. 한국도 144경기 체제가 처음 도입된 2015년에는 18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발투수가 9명이었지만, 작년에는 단 2명(윌커슨·후라도)에 그쳤다.

그래픽=이철원

요즘엔 구원투수도 셋업맨, 롱릴리프, 마무리로 역할이 세분화되고, 아예 선발로 나와 1~3회 정도만 던지는 오프너를 맡는 경우도 있다. 특급 불펜 자원에게 1000억원이 넘는 대형 FA 계약을 안기는 것이 예삿일이 될 정도로 구원투수에 대한 대우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2022년 뉴욕 메츠의 수호신 에드윈 디아즈는 5년 1억200만달러(약 1424억원)에 계약하며 역대 구원투수 최고액을 경신했다. 작년엔 조시 헤이더가 5년 9500만달러(약 1326억원)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합류하는 등 1억달러를 넘나드는 계약이 곧잘 나온다. MLB 역대 최고 마무리로 꼽히는 마리아노 리베라는 2007년 당시 구원투수 최고액인 3년 4500만달러(약 628억원)를 받은 바 있다.

불펜진 역량은 이제 강팀을 가르는 필수 조건 중 하나가 됐다. 실제 올해 프로야구 선두를 달리는 LG는 시즌 후반기 8할대 승률을 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효율적인 불펜 관리가 그 비결로 꼽힌다. LG는 올 시즌 구원투수들이 3일 연속 등판하는 경우가 없는 유일한 팀이다. 김진성, 유영찬, 장현식, 김영우 등 풍부한 불펜 자원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MLB에선 ‘불펜 왕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선전하고 있다. 로버트 수아레스 등이 활약하며 구원투수 평균자책점이 3.04로 리그에서 가장 낮다. 리그 역사상 최초로 올해 올스타전에 구원투수 3명을 내보냈다. 강력한 불펜진을 앞세워 75승 58패를 기록, 전년도 우승팀 LA 다저스(76승 57패)와 NL 서부리그에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