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양효진(34)은 배구 역사에 남을 금자탑을 또 한 번 세우고도 정작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그는 ‘기록의 수치’보다도 ‘기록의 가치’에 대해 얘기했다.
2위 현대건설(승점69·24승9패)은 5일 프로배구 여자부 홈경기(수원체육관)에서 페퍼저축은행을 상대로 세트스코어 3대2(25-18 22-25 17-25 25-15 15-12)로 승리했다. 리그 선두 자리는 한 경기를 덜 치른 흥국생명(승점73·24승8패)에 내줬지만, 3연승을 달리며 선두 경쟁 불씨를 살렸다.
양효진은 이날 자신의 462번째 경기에서 블로킹 4개를 포함해 21득점(공격성공률 58.62%)을 올리며 V리그 남녀부 통틀어 최초로 7000득점(7006점) 고지를 밟았다. 남자부 통산 득점 1위는 한국전력의 박철우(38·6573점)이고, 여자부 통산 득점 2위는 같은 팀의 황연주(37·5764점)다.
경기 후 만난 양효진은 남녀부 득점 기록을 재확인하고 “많이 하긴 했네요”라고 첫마디를 건네며 인터뷰장에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지금은 (현역이라) 크게 와닿진 않지만, 은퇴하고 돌아봤을 때는 뭔가 ‘내가 잘 해내긴 했구나’라면서 뿌듯하게 느껴질 것 같다”고 돌아봤다.
양효진이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한 것에 대해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은 “남자부에도 없는 기록 아니냐. 우리 팀엔 좋은 일이 있으면 커피를 쏘는 문화가 있다. 축하한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양효진은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기록 달성에 대한) 상금을 받아 커피를 쏘고 싶다”고 화답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현역 선수로 뛰는 동안 더 이루고 싶은 기록이 있냐는 질문엔 “죄송한데 (이젠) 진짜 없다. 10년 블로킹 1위라는 기록은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건 내가 달성을 했다”면서 “어릴 때는 경쟁이다 보니 수치를 따지면서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배구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지금은)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며 해보자는 마음이다. 아직도 더 뛸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옆에서 동료들이 나를 도와줬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효진은 2009-2010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블로킹 1위 자리를 지킨 바 있다. 그는 이날 통산 블로킹 1450득점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남녀부 통틀어 최다다.
흥국생명과의 우승 경쟁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현대건설은 올 시즌을 개막 15연승으로 시작해 한때 압도적인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정규리그 우승은 현대건설의 몫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인해 최근 5연패에 시달렸고, 지난달 15일 흥국생명에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따로 얘기를 안 해도 선수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다 인지를 하고 있다. 선수들이 (나이는) 어려도, 생각은 어리지 않다”며 “이번 시즌엔 (우승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고 시즌 스타트도 좋아서 (1위를 내준 뒤) 실망감이 좀 크긴 했는데, 각자가 추스르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19-2020시즌과 2021-2022시즌에 모두 리그 1위를 달리는 도중에 코로나라는 변수로 리그가 조기 종료돼 ‘우승’이라는 결실은 맺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현대건설이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2010-2011시즌 때이다.
상황이 녹록지는 않지만 양효진은 “꼭 (우승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방법이 좋은 게 아니다”라며 “도착지만 같다면 여러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고 다짐했다.
양효진은 인터뷰를 마친 이후 이날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팬들과의 저녁 식사 행사에 참가해 기쁨을 나눴다.
33경기를 치른 현대건설은 10일(한국도로공사전), 16일(KGC인삼공사전), 19일(흥국생명전) 세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수원=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