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보다 개인이 위대할 때도 있다. 남자 프로배구 KB손해보험의 ‘말리 폭격기’ 노우모리 케이타(21)가 증명한다.

KB손해보험은 7일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대1(18-25 25-19 27-25 25-18) 역전승을 거뒀다. 1차전 때 세트 스코어 1대3으로 졌던 것을 똑같이 갚으면서 대한항공과 1승씩 나눠 가졌다. 3차전이 열리는 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우승 팀이 나온다.

내가 배구왕이야 - 남자프로배구 KB손해보험 케이타(왼쪽)가 7일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35점을 뽑아내며 세트 스코어 3대1 역전승을 이끌고‘나는 왕이다(I’M KING)’라고 쓰여 있는 안쪽 티셔츠를 보여주며 환호하고 있다. 케이타는 경기를 마치고“나 자신을 믿었다. 무조건 우승하겠다. 지켜봐달라”고 했다. /연합뉴스

케이타는 KB손해보험이 ‘케이타 손해보험’으로 불리는 이유를 이날 3세트에서 보여줬다. 대한항공이 3세트 24-19까지 먼저 도달했다. 대한항공이 한 점만 더 내면 3세트를 가져가는 것은 물론 2년 연속 통합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상황. 20-24로 한 점 따라붙은 KB손해보험의 서브 라인에 케이타가 섰다. 이때부터 배구 팬들은 보고도 못 믿을 광경을 봤다.

케이타는 대한항공 리시브 라인을 뒤흔드는 강스파이크 서브를 내리꽂더니, 4연속 후위공격 성공을 포함해 5연속 득점을 책임져 경기를 25-24로 뒤집었다. 2000여 팬이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었다. 25-25 듀스 끝에 KB손해보험이 다시 케이타를 앞세워 내리 2점을 뽑아 3세트를 따냈다. 케이타는 단 한 번만 실수해도 세트를 내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 치 오차도 없는 폭격을 선보였다. 샛노란 물결을 이룬 팬들이 응원가 ‘붉은 노을’을 케이타를 향해 목놓아 불렀다.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엔 너뿐이야!”

반면 다 잡았던 세트를 허무하게 내준 대한항공 선수단은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들은 끝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4세트 마지막 케이타의 공격이 터치 아웃되면서 경기가 끝났다. 홀로 35점을 꽂은 케이타는 유니폼 안에 적어둔 “내가 왕이다(I’m King)” 문구를 위풍당당하게 치켜올렸고, 동료들은 그를 에워싸고 창단 첫 챔프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은 여전히 시뻘건 얼굴로 경기 후 인터뷰실에 나타났다. 그는 “오늘 케이타가 정말 잘했다. 그가 어려운 순간에 그렇게 서브를 잘 때린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면서도 “3차전은 우리의 홈에서 열리니까 반드시 대한항공이 이기는 날로 만들겠다”고 했다. 후인정 KB손해보험 감독은 힘이 넘쳤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케이타만 믿는다”면서 그의 이름을 수십 번 말했던 그는 경기 후에도 “오늘 케이타가 터져줄 줄 알았다. 인천으로 가서 무조건 우승하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케이타는 양 무릎에 냉찜질을 칭칭 두른 채 “오늘 경기 전 형들과 ‘인천으로 꼭 가자’고 다짐했는데, 약속을 지켜서 너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3세트 막판의 맹활약 비결로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자신 있게 했고, 그게 통했다”면서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늘 과감하게 하는 것이 ‘케이타의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케이타가 인천에서도 날아다닌다면 KB손해보험에 창단 첫 우승을 선사한다. 그는 “마지막 경기가 쉽지 않겠지만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임할 것”이라며 “우승이야말로 내가 한국에 온 이유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우승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눈을 빛냈다.

의정부=양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