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도쿄패럴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대한민국 국기(國技) 태권도의 첫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의 자키아 쿠다다디(23)였다. 그는 애초 남자 육상 선수 호사인 라소울리(26)와 함께 지난달 16일 수도 카불을 떠나 이튿날 도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면서 공항이 마비됐고 발이 묶였다. 그는 국제사회에 “패럴림픽 참가를 도와달라”며 호소했고, 여러 정부와 단체의 도움으로 조국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를 거쳐 지난달 28일 도쿄에 입성했다.
쿠다다디는 2일 오전 10시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 B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태권도 첫 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여자 49㎏급 16강전에 나서 지요다콘 이자코바(우즈베키스탄)를 상대했다.
대규모 이벤트가 열리는 홀 가운데 단 하나의 무대가 마련됐다. 경기장 내부는 암전으로 어두웠고 푸른 팔각형의 경기장만 도드라졌다. 먼저 쿠다다디가 대형 전광판 아래 선수 출입구를 통해 모습을 나타냈다. 어둠 속에 조명을 받은 그는 당당한 모습으로 30m 정도 떨어진 무대로 향했다. 경기장 내부에 이매진 드래곤스의 ‘썬더(Thunder)’ 하이라이트 부분이 쿵쿵 울려 퍼졌다. 쿠다다디에 이어 이자코바도 등장했다.
두 선수는 한손으로 능숙하게 머리보호대를 착용했다. 그리고 서로의 몸통을 발로 차며 보호구 센서를 점검했다. 이어 주심 크루퍼 제니퍼가 “준비”에 이어 “시작”을 크게 외쳤다.
두 선수는 초반 탐색전 없이 타격전에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키가 큰 쿠다다디가 긴 다리를 이용한 몸통 공격으로 선제점을 얻었다. 이자코바가 반격에 나섰고 공방전이 이어졌다. 1라운드는 쿠다다디가 6-5로 1점차로 앞섰다. 쿠다다디는 2라운드에서 역전을 당했다. 이자코바가 내리 3번의 몸통 발차기를 성공하며 순식간에 12-6 더블스코어를 만들었다. 이자코바는 근접전으로 쿠다다디의 공격을 차단하며 유효타를 날렸다. 마지막 3라운드에서 쿠다다디가 뒷심을 보이며 추격전에 나섰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쿠다다디가 12-17로 패했다.
쿠다다디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출전으로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의족소녀’ 마리나 카림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의 두 번째 여성 패럴림픽 선수로 기록됐다. 카림은 지난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여자육상 T46 100m에 출전했다. 당시 카림은 어린 시절 두 다리가 불에 타며 의족을 낀 두 다리로 힘껏 달렸다. 비록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전쟁으로 황폐해진 조국 아프가니스탄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쿠다다디 역시 희망을 품고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와 도쿄 패럴림픽 무대에 섰다. 힘든 과정을 거쳤다. 지난달 중순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급변하며 쿠다다디는 수도 카불을 떠날 수 없게 됐다.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여성 대표로서 도움을 청한다.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게 목표다. 내 손을 잡고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이후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국제사회가 발 빠르게 움직였고 쿠다다디는 남자 육상 선수 호사인 라소울리과 함께 지난달 말 극적으로 카불 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를 거쳐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태권도연맹은 쿠다다디의 대체 선수를 뽑지 않고 그의 출전을 기다렸다. 패럴림픽 개회식에선 선수 없이 아프가니스탄 국기만 입장했다. 선수들이 늦게라도 참가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한 것이다.
쿠다다디는 왼팔에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뒤뜰이나 공원에서 훈련을 계속하며 패럴림픽 출전의 꿈을 키웠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로훌라 니크파이를 TV로 보고 영감을 받았다. 니크파이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연속 동메달을 획득한 아프간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다.
쿠다다디와 함께 국경을 넘은 라소울리는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육상 남자 멀리뛰기(T47) 에 출전해 13명 중 13위로 마쳤다. 그는 100m가 주종목이지만 메달보다 출전에 더 의미를 두었다. 힘찬 도약으로 스포츠정신을 알렸다.
우리나라는 3일 오전 10시30분 남자 75㎏급에서 주정훈(27·SK에코플랜트·세계 12위)이 첫 경기에 나선다. 세계 5위 마고메드자기르 이살디비로프(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와 맞붙는다. ‘종주국’ 대한민국 최초의 패럴림피언이자 유일한 출전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