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가 든 아프가니스탄 국기만 달랑 나왔는데 가장 큰 박수가 터졌다. 최근 탈레반의 정권 장악 이후 아프가니스탄 첫 여성 패럴림피언 꿈이 무산된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에게 보내는 연대의 손짓이었다.

도쿄올림픽의 감동과 환희를 이제는 도쿄패럴림픽이 잇는다. 전 세계 161국과 난민 팀에서 역대 최다인 4403명이 출전한 도쿄패럴림픽은 다음달 5일까지 총 13일간 펼쳐진다. 개회식은 '우리에겐 날개가 있다(We have wings)'란 주제로 열렸다. 2020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폐회식의 공통 주제인 '전진'에 더해 우리가 모두 역풍과 고난을 헤쳐나갈 '날개'를 갖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패럴림픽은 1960년 로마 대회부터 시작했다. 도쿄는 1964년에 이어 역대 최초로 패럴림픽을 두 번 개최한다. 사진은 24일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개회식(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경기장에 태극 문양이 표현되는 모습./사진공동취재단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 다시 한번 성화가 타올랐다. 2020 도쿄패럴림픽이 24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내달 5일까지 13일간의 열전을 시작했다. 전 세계 161국과 난민 팀에서 패럴림픽 역대 가장 많은 4403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22종목에 539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개회식에선 162팀이 아닌 163팀이 소개됐다. 추가로 소개된 주인공은 다섯 번째로 입장한 아프가니스탄. 무관중이었지만, 대회 관계자와 귀빈, 취재진 3200여 명은 힘껏 박수를 쳤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번 패럴림픽에 여자 태권도 대표인 쿠다다디 등 2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쿠다다디는 최근 서구 매체에 보낸 영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 대표로서 도움을 청한다. 도쿄 패럴림픽 출전이 목표니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앤드루 파슨스 IPC(국제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아프가니스탄 선수들과 함께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마음만은 함께할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 국기 입장을 결정했다. 이날 맨 먼저 입장한 난민팀 기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자 수영 선수 아바스 카리미(24)가 맡았다. 카리미는 쿠다다디 등의 불참으로 조국 선수를 만날 기회를 놓쳤다. ‘우리에겐 날개가 있다(We have wings)’라는 주제로 열린 개회식에는 나루히토 일왕과 파슨스 IPC 위원장,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 선수단 40명은 훈색(분홍빛 계열) 생활한복 디자인의 단복을 입고 82번째로 입장했다. 한국은 14종목에 선수 86명이 출전한다. 탁구⋅배드민턴⋅보치아에서 금메달 4개를 따내 종합 20위권을 목표로 한다.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21년 만에 패럴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남자 휠체어농구는 25일 오후 8시 30분 스페인과 조별리그 A조 첫 경기(무사시노노모리 스포츠 플라자)를 치른다. 가슴 벅차고 설레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마냥 그럴 수만은 없다. 작년 세상을 떠난 고(故) 한사현 감독의 못다 이룬 꿈에 계속 도전하기 위해서는 슛⋅리바운드 하나하나가 비장(悲壯)하다.

한 전 감독은 국내 휠체어농구의 대부였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10년이 지난 1984년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1991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2000 시드니 패럴림픽 때 한국 휠체어농구 사상 처음 본선 무대를 밟았다. 은퇴 후 지도자가 된 그는 2010년부터 대표팀을 이끌었고, 2014년 인천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첫 8강(6위)도 일궜다. 다음 목표는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끊긴 패럴림픽 출전과 4강 진출이었다. 한 전 감독은 오랜 기간 대표팀에서 활약한 주장 조승현(38·춘천시장애인체육회) 등 선수들을 계속 다독이며 ‘원팀’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간암과 싸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내 2019년 12월 IWBF(국제휠체어농구연맹) 아시아·오세아니아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며 도쿄행 티켓을 따냈다. 꿈의 무대가 눈앞에 온 순간 코로나 바이러스와 병마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로 패럴림픽이 1년 연기됐고, 한 전 감독은 작년 9월 영면했다. 한국은 스페인⋅캐나다⋅터키⋅콜롬비아⋅일본과 같은 조다. 조 4위 안에 들면 8강 진출에 이어 한 전 감독의 꿈인 4강도 바라볼 수 있다. 첫 상대 스페인은 2016년 리우 대회 준우승팀. 조승현은 “준비한 대로 보여준다면 언더도그(underdog·약자) 이변이 일어날 것”이라며 “지금도 한 감독님이 하늘에서 보고 계시면서 자신이 심은 농구 DNA를 우리가 코트에서 펼칠 수 있게 도와주실 거라 믿는다”고 했다.

/도쿄=송원형 기자·도쿄패럴림픽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