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3 완패였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8일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리우올림픽 은메달 팀인 세르비아에 무릎을 꿇었다. 45년 만의 메달 도전이 무산돼 아쉬웠지만, 그래도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애써 웃어 보였다. 센터 양효진이 “살찔 시간도 없다. 눈 뜨면 밥 먹고 운동한다. 외부활동을 못한지 4달이 됐다”고 할 만큼 최선을 다해 대회를 준비한 만큼 “고생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전망이 불투명했다. 한국 배구의 희망이자 주축 멤버로 성장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폭 논란으로 대표팀에서 빠졌고, 지난 6월 끝난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선 3승12패로 부진했다.
많은 이들은 김연경(33)·김수지(34)·양효진(32) 등 주축 선수들이 30대 초중반인 한국이 과연 올림픽 본선 무대의 강행군을 버틸 수 있을까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들의 ‘라스트 댄스’는 생각보다 훨씬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세계랭킹 12위인 한국은 ‘도장 깨기’를 하듯 랭킹 상위 팀을 잡아나갔다. 7위 도미니카공화국을 풀세트 접전 끝에 꺾은 한국은 숙명의 한일전에서도 5세트에 극적인 승리를 따내며 조 3위로 8강에 올랐다. 이시카와 마유, 고가 사리나 등 세대 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일본은 이번 대회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베테랑들의 투혼이 빛난 한국에 덜미를 잡히며 결국 8강에 오르지 못했다.
대표팀은 8강전에선 세계 4위의 강호 터키를 맞아 또 한 번 풀세트 접전을 벌여 승리하며 4강 진출의 감격을 맛봤다. 이쯤 이면 ‘약속의 5세트’란 말이 나올 만큼 한국 배구 역사에 남을 만한 명승부였다. 비록 브라질과 4강, 세르비아와 동메달결정전에서 레벨 차이를 실감하며 메달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세계 4강이란 빛나는 성과를 달성한 한국 여자 배구의 이번 올림픽 여정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래도 김연경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김연경은 “런던 땐 아무 것도 모르고 나갔고, 리우 때는 메달 욕심을 냈지만 잘 안됐다”며 “이번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대표는 영광스럽고 무거우며 자랑스러운 자리”라며 “눈앞의 한 경기 한 경기를 준비해 좋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결국은 그냥 그렇습니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연경은 지난 세 번의 올림픽 중 이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준비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이렇게 준비하면 끝나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가 없겠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같이 고생한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대표팀 후배들은 틈만 나면 “연경 언니에게 힘을 받았다”고 했다. 정작 그는 외롭진 않았을까. 김연경은 “선수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고”라면서 눈물을 살짝 보였다. 박정아는 “연경 언니도 그렇고 다른 언니들도 그렇고 다들 이제까지 고생많았고, 제가 조금 더 잘했으면 언니들한테 좀 더 도움됐었을텐데”라며 울먹였다.
3년 후엔 파리올림픽이 열린다. 그때면 김연경은 36세다. 그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다. 파리에선 후배들이 좀 더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끌어올린 한국 여자배구의 위상을 더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정말 많은 관심 속에 대회를 치러 꿈 같은 시간이었다”고 했지만, 이번 대회 믹스트존에서 만난 모습 중 가장 가라앉아 있어 보였다.
“모르겠어요. 머리가 하얗고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