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도 아닌데, 강유정(25)은 빡빡 민머리로 나타났다. 칼에 베인 것처럼 듬성듬성 드러나는 두피가 평범한 삭발이 아님을 말했다. 24일 오전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유도 여자 48kg급 첫 경기 32강전. 그는 스탄가르 마루사(슬로베니아)를 상대로 경기 시작 27초 만에 절반을 얻어냈지만,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상대에게 누르기를 허용해 한판패를 당했다. 힘이 다 빠져 기운 없는 티가 역력했다. 2분 만에 올림픽이 끝났다.

여자 유도 48㎏급 국가대표 강유정이 25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부도칸에서 빡빡 민 머리로 동료의 연습을 도와준 후 연습장을 나서고 있다. 그는 24일 경기를 앞두고 계체를 통과하지 못하자 경기장에서 문구용 가위를 이용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연합뉴스

그 2분을 위해 강유정은 머리카락을 바쳤다. 그는 전날 계체(48.5kg까지 통과) 2시간을 앞두고 체중 300g 초과로 실격패 위기에 내몰렸다. 탈수 증세로 쓰러지면서도 뛰고 또 뛰어 150g을 줄였다. 그래도 남은 몸무게는 150g. 계체 5분을 남기고 강유정은 “머리를 깎겠다”고 했고, 조직위 관계자들이 쓰던 문구용 가위로 고작 손가락 한마디 길이였던 머리카락을 급하게 잘랐다. 그러자 체중계가 반응했다. 가까스로 계체 통과. 조직위 관계자들이 같이 박수를 쳤다.

강유정은 작년 10월 무릎 수술을 받았다. 그동안 같은 체급 정보경(2016 리우 은메달)에게 밀렸다가 국내 1인자가 됐는데, 무릎 수술로 국제 대회에 못 나간 새 세계 랭킹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재활도 제대로 못 하고 지난 5~6월 국제대회를 뛰었다. 잘 걷지도 못할 만큼 혹사한 대가로 출전권을 땄지만,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 예전 같은 체중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강유정이 눈물을 꾹 참고 말했다. “머리카락은 하나도 안 중요했습니다.” 그는 이튿날 52kg급에 나선 박다솔의 훈련 파트너가 되어줬다.

24일 일본 부도칸에서 남자 유도 60kg급 경기를 하는 김원진./연합뉴스

이날 오후엔 김원진(29·유도 남자 60kg급)이 나왔다. 8강전에서 절반 2개 허용으로 졌지만, 다시 마음을 추슬러 동메달 결정전까지 올라왔다. 동메달전 상대는 루카 맥헤이제(프랑스). 연장 승부에서 지도 3개(반칙패)로 졌다. 지도는 심판 재량이기에 패배 여운이 더욱 씁쓸했다.

김원진은 올 초 메이저 대회(도하 마스터스) 첫 우승을 했을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는 아버지 영전에 메달을 바치겠다는 분명한 목표로 처절하게 훈련했다. 5년 전 리우에서 8강 탈락했던 아픔을 씻어내겠다는 의지로 불탔다. 하지만 이번엔 최종 4위다.

김원진의 아버지 고 김기형씨가 생전 아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눕혀놓았던 유도 인형.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아들 곁을 떠났지만, 인형은 그 모습 그대로 있다./철원=양지혜 기자

경기 후 만난 김원진의 얼굴엔 시뻘건 땀이 흘렀다. 양손과 발목은 붕대로 만신창이였다. 눈가도 붉게 그렁그렁했지만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소지었다. “결과는 너무 아쉽지만…. 정말 모든 것을 쏟아내서 준비해왔기 때문에 티끌만큼의 후회도 없습니다. 준비는 정말 완벽하게 했습니다. 하늘에서 이걸 다 지켜보셨을 아버지도 자랑스러워하실 걸 알기에, 떳떳하게 아버지 묘소를 찾아뵐 수 있겠습니다.”

얼마만큼 노력해야 “결과는 아쉬워도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선수촌에 틀어박혀 운동만 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던 청춘은 보는 사람을 울린다. 그 울림을 느끼면서 호텔에서 여자들과 술 파티 벌이다가 리그마저 중단시킨 프로야구 선수들, ‘아빠 찬스’로 온갖 불법을 일삼고서도 “그게 왜 죄냐” 반문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정말 최선을 다한 얼굴이 뿜어내는 광휘를 24일 일본 부도칸에서 보았다. 그 빛의 색은 금빛과도 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