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실수의 잔상을 털어낸 무대였지만, 차준환(25·서울시청)은 웃지 않았다. “한 줌의 후회도 없이 모든 것을 쏟아냈다”면서도 “기대보다 점수가 낮아 아쉽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피겨스케이팅 스타 차준환이 11일(한국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92.72점을 받아 6위를 기록했다. 개인 최고점인 101.33점(2023 월드 팀 트로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 시즌 최고점을 새로 썼다.
일리야 말리닌(22·미국·108.16점), 가기야마 유마(23·일본·103.07점) 등 쇼트 1~5위 선수들은 이날 모두 4회전 점프를 2차례씩 뛰었고, 차준환은 1번(쿼드러플 살코) 포함했다. 지난 8일 단체전 경기(83.53점·8위) 때 회전이 풀려 싱글 악셀로 처리되는 실수가 나왔던 트리플 악셀은 이번에는 회전 수가 약간 모자라 일부 감점을 받았다.
차준환과 3위 아담 샤오 힘 파(25·프랑스·102.55점)의 격차는 9.83점. 차준환은 14일 오전 3시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한국 남자 피겨 최초의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그는 2018 평창 15위, 2022 베이징에선 5위를 기록했다.
반짝이는 남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오륜기가 새겨진 은반 위에 선 차준환은 배경 음악 ‘당신의 검은 눈동자에 내리는 비(Rain, In Your Black Eyes)’ 선율에 몸을 맡기며 쿼드러플 살코,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무난하게 처리했다. 플라잉 카멜 스핀(높게 뛰어오른 뒤 착지하며 회전)을 최고 난도인 레벨4로 소화했다. 그는 무대를 마치고선 ‘해냈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 차준환의 쇼트 점수는 4년 전 베이징 올림픽(99.51점)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경기 후 “단체전 때 실수는 컨디션 난조 탓이었고, 이후 훈련 강도를 끌어올리며 몸 상태를 되찾았다”면서 “점프와 스핀 등 연기의 퀄리티가 이전보다 발전했다고 느꼈는데, 채점 결과가 아쉽다. 이번 시즌 숱한 어려움을 버티며 올림픽 무대에 섰기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차준환은 고질적인 오른쪽 발목 부상이 재발한 데다 스케이트화 문제가 겹쳐 올 시즌 고전했다.
차준환은 이번 올림픽 개막을 약 한 달 앞두고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을 ‘미치광이를 위한 발라드’로 교체했다. 지난해 하얼빈 아시안게임에서 그에게 금메달을 안겨줬던 곡이다. 이번 올림픽 직전 열린 지난달 사대륙선수권에서도 이 프로그램으로 프리스케이팅 1위를 차지하며 쇼트프로그램 6위 성적을 극복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차준환은 “올림픽 메달의 꿈을 포기한 적 없다”며 “오늘처럼 순간을 즐기는 성취를 이룬다면 결과에 대한 성취도 따라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말리닌은 자신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쿼드러플 악셀(공중 4회전 반)을 구사하지 않고도 1위에 올랐다. 단체전에 이어 이번에도 백플립(공중 뒤돌기)을 선보이며 관중 환호를 이끌어냈다. 트리플 악셀 착지에서 실수한 가기야마가 2위였다. 첫 올림픽 무대에 도전한 김현겸(20·고려대)은 트리플 악셀을 뛰다가 넘어져 29명 중 26위(69.30점)에 그쳤다. 김현겸은 상위 24명만 나가는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