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생 클로이 김(미국)은 열여덟 살이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금메달을 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 번의 연기 기회 중 1차 시기 점수로 이미 우승을 확정했고, 3차 시기는 금메달을 자축하는 ‘빅토리 런’으로 마무리했다. 4년 뒤 베이징에서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한 그는 이번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에서 남녀 통틀어 최초의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3연패에 도전한다.
클로이 김이 대기록을 세우려면 한국의 18세 스노보더를 넘어서야 한다. 8년 전 그처럼, 무서운 기세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장을 낸 한국의 최가온이다. 다음 달 고3이 되는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 이뤄낸 성취를 차근차근 따라잡으며 ‘라이벌’로 꼽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최가온에 대해 클로이 김은 “어릴 때부터 봐온, 내가 사랑하는 친구”라며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내 어릴 때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최가온은 2023년 세계적인 권위의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 윈터 X게임에서 만 14세 2개월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종전 최연소 기록은 2015년 클로이 김이 세운 14세 9개월이었다. 두 선수는 FIS(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나이도 만 15세로 같다. 정확히는 최가온이 9개월 정도 앞섰다.
‘평행이론’처럼 똑 닮은 클로이 김과 최가온이 11일(한국 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하프파이프 예선을 치렀다. 최가온은 6위, 클로이 김은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둘은 13일 새벽 금메달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원통을 반으로 잘라놓은 모양의 슬로프를 내려오며 여러 차례 점프 연기를 하는 종목이다. 예선은 두 번, 결선은 세 번 경기를 치러 합계가 아닌 최고 점수로 메달을 가린다.
두 선수는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필살기’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클로이 김은 경쟁자를 압도하는 점프 높이와 이를 활용한 연속 기술 ‘백투백’ 구사가 강점이다. 점프가 높은 덕분에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 고난도 기술을 연달아 선보이는 데 유리하다. 11일 예선에서는 백투백을 구성에 넣지 않고도 90.25점(1차 시기)으로 순위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결선에선 회전 수를 늘리는 등 고득점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초 어깨 부상을 당한 탓에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나선 그는 “3연패 생각은 안 하고 있다. 다쳐도 스노보드 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가온에 대해선 “올림픽이라고 너무 걱정 말고 연습한다고 상상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예선 1위 클로이 김은 13일 결선에서 맨 마지막 순번으로 경기한다. 다른 선수들의 득점 상황을 확인하고 기술 난도를 조정할 수 있다.
최가온은 이번 대회를 위해 ‘스위치 백사이드’ 기술의 난도를 눈에 띄게 높였다. 원래 스노보드를 타는 방향과 반대인 오른발을 앞세워 질주하면서 등 쪽 방향으로 회전하는 기술이다. 주행 방향을 반대로 바꾸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꺼리는 선수가 많다. 평소 두 바퀴 반(900도)을 도는 최가온은 예선에서는 두 바퀴(720도)만 회전하는 등 안전하게 점수(82.25점)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2차 시기에 난도 높은 프런트사이드 세 바퀴(1080도) 회전에 도전했으나 넘어지는 바람에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최가온은 “월드컵 때와 똑같이 탔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오늘은 반도 안 보여드렸다. 결선에선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겠다”고 했다.
결선 금메달의 향방은 1260도(세 바퀴 반) 성공 여부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자 선수로는 클로이 김만 유일하게 성공한 적이 있는데, 최가온도 꾸준히 연습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