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 객석을 빼곡히 채운 1만3000여 관중의 시선이 마지막 순서로 나선 ‘쿼드 갓(4회전 점프의 신)’ 일리야 말리닌(22·미국)에게 쏠렸다. 말리닌은 강렬한 힙합 비트에 맞춰 쿼드러플 플립 점프 등을 수행했다.
그러다 속도를 조절하며 빙판 중앙 쪽으로 이동해 호흡을 가다듬더니, 얼음을 박차고 솟구쳐 공중에서 뒤로 한 바퀴를 돌았다. 그의 스케이트 날이 빙판에 닿는 순간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금기의 기술’이었던 백플립(Back Flip·공중제비)이 50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악셀과 루프, 살코 등 피겨 점프 기술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회전축을 형성해 팽이처럼 도는 방식이라면, 백플립은 그 회전축을 90도 꺾은 기술이다. 도약 직전 빙판에서부터 몸에 회전을 주며 자연스럽게 추진력을 만들 수 있는 일반 점프와는 달리, 백플립은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단숨에 공중제비를 돌기 때문에 유연성과 코어 힘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1976 인스브루크 올림픽에서 미국의 테리 쿠비츠카가 처음 선보였지만, ISU(국제빙상경기연맹)는 착지 때 선수들의 부상 우려를 이유로 백플립을 금지했다.
이렇게 봉인된 백플립은 피겨계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98 나가노 올림픽에서 아프리카계 프랑스 선수인 수리야 보날리가 여자 싱글에 출전해 백플립을 감행했다. “피겨계를 백인과 아시아 선수들이 독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그는 은퇴 무대였던 나가노 올림픽에서 감점 페널티를 감수하며 ‘항의’의 메시지로 보란 듯 공중제비를 돌았다.
백플립이 국제 무대에 다시 등장한 건 2024년 3월. 중국계인 아당 샤오잉파(프랑스)는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백플립을 선보여 2점 감점을 받고도 동메달을 땄다. 그는 “감점을 당하는 걸 알았지만, 피겨 발전을 위해 이 기술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ISU도 결국 변화를 받아들였다. ISU는 2024년 6월 총회 때 “고난도 기술이 보편화된 지금 백플립을 금지하는 건 더 이상 논리적이지 않다”며 백플립을 정식 기술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감점 규정은 사라졌지만 백플립 기술 자체에 점수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체조를 배운 말리닌이 밀라노에서 선보인 백플립은 이 기술이 더는 금기가 아니라 정식으로 올림픽 무대에 복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말리닌은 자신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구사하는 ‘쿼드러플 악셀(4회전 반)’ 점프를 구사하지 않고도 98점을 받아 가기야마 유마(일본·108.67점)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는 경기 후 “(백플립은) 몇 주 전부터 내가 꿈꿔온 그림”이라며 “개인전까지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랭킹 포인트 34점을 쌓아 예선 1위, 일본(33점)이 2위로 단체전 결선에 진출했다.
한편 차준환(25)은 단체전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83.53점으로 전체 10명 중 8위에 그쳤다. 트리플 악셀 도중 회전이 풀려 싱글 악셀로 처리되면서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는 “평소 하던 실수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개인전까지 이틀의 시간이 있는 만큼 더 나은 무대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한국은 랭킹 포인트 14점으로 7위에 머물며 상위 5국이 경쟁하는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