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상의 탈의하고 싶었는데, 베냐민 선수처럼 몸이 좋지(멋지지) 않아서 참고 그냥 안아줬습니다.”
8일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단에 대회 첫 메달을 안긴 김상겸(37)이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이날 김상겸의 결승 상대 베냐민 칼은 김상겸을 꺾고 나서 자신이 금메달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상의를 전부 벗고 마치 축구선수 호날두처럼 격하게 포효했다.
한국 설상 종목 역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했던 김상겸은 비록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보드를 번쩍 들고 포효한 뒤 잠시 기다렸다가 칼을 안아줬다. 아쉬움보다는 기쁨 가득한 얼굴로 코칭스태프와 은메달을 자축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김상겸은 “생각한 대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선 8등이었지만 자신 있었던 슬로프, 기문 배치였기 때문에 2등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운도 좀 따랐다”고 했다. 그와 16강에서 맞붙었던 잔 코시르(슬로베니아), 8강 상대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는 그와 경기 중 미끄러지거나 자세를 삐끗하며 경기를 마치지 못했다.
김상겸은 “저는 실수가 최대한 없는 라인을 공략하려고 했고, 상대 선수들은 조금 더 공격적인 라인을 구사하다 실수가 나온 것 같다”며 “나는 생각했던 전략대로 탔고 운도 좀 좋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잔 코시르는 8년 전 평창 16강에서 김상겸에게 패배를 안긴 상대다. 김상겸은 “다시 16강에서 만난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상겸은 2014년 소치 올림픽 이후 네 번째 대회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땄다. 그는 “메달 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최선을 다했고, 슬로프도 자신 있었기 때문에 준비해온 걸 펴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연습 주행 때 타 보니 슬로프의 형태나 설질 등이 파워풀한 레이스를 펼치는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금세 붉어졌다. 그는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여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효도도 못했는데…. 이제 메달 들고 갈 테니까 기다려줘”라고 했다.
“부모님 얘기하면 이거 눈물이 나네요”라며 “결승 진출이 확정되고 메달을 확보한 순간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나오려 했다.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응원을 많이 해줘서 감격을 했다”고 했다. 그는 결승에 가까워올수록 유독 소리를 많이 질렀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아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어렵게 선수 생활을 이어온 시절을 돌아보며 “당시에는 쉽지 않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내가 스노보드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일용직 노동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아파트 건설 현장, 가스 공장 등 인력 파견 회사에서 보내는 곳은 다 갔다”고 했다.
지금은 실업팀에서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기에 사정이 크게 나아졌다고 한다. 김상겸은 “체력이 되는 한 계속 운동하고 싶다. 올림픽에 두 번 더 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상겸은 이날 시상대에 오르기 전 큰절을 했다. “항상 해보고 싶었던 세리머니”라며 “다음 주가 설날이다. 응원해 주신 분들께 작게나마 인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은메달로 한국이 동·하계올림픽에서 수확한 메달 수는 정확히 400개가 됐다. 김상겸은 “그 사실을 몰랐는데 뭔가 (역사에) 기록을 남긴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