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mm. 종이 몇 장 차이로 메달 색깔이 갈렸다. 4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개인전 결승. 한국 김우진(32·청주시청)과 미국 브래디 앨리슨(36)이 벼랑 끝까지 서로를 몰고 갔다. 김우진은 이날 엘리슨에게 1·3세트를 내주면서 끌려갔지만, 2·4세트를 가져왔다. 세트 점수 4-4. 마지막 5세트는 명승부 서막이었다. 두 선수 모두 3발을 10점에 꽂았다. 결국 5-5 동점인 상태에서 화살 한 개로 승부를 가르는 슛오프.

여기서도 또 두 선수는 똑같이 10점을 쐈다. 그러나 김우진이 현미경 차이로 이겼다. 슛오프에서도 동점이면 화살로부터 과녁 중앙까지 거리를 비교해 더 짧은 선수가 이긴다. 그 거리가 김우진이 55.8mm, 엘리슨이 60.7mm였다. 눈으로 봐선 알 수 없는 승부를 김우진이 이긴 것이다. 김우진은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로봇 슈팅 기계와 슛오프도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모든 화살을 과녁 한가운데 꽂는 로봇에게는 졌지만, 인간인 엘리슨에게는 승리했다.

4일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김우진(가운데)이 은메달 브레이디 엘리슨(미국·왼쪽), 동메달 이우석과 관중들의 환호에 두 팔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뉴스1

이날 김우진 금메달로 한국 양궁은 파리 올림픽 전 종목 석권 꿈을 이뤘다. 남자 단체, 여자 단체, 혼성 단체, 남자 개인, 여자 개인 5개 종목 전부 금메달을 따냈다. 양궁 단일 올림픽 5개 금메달은 한국이 처음이다. 전 종목 석권은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8년 만이다. 당시엔 혼성이 없어 금메달이 4개였다.

김우진은 지난 3개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수확하면서 김수녕(양궁), 진종오(사격), 전이경(쇼트트랙)이 동·하계 올림픽에서 따냈던 금메달 4개를 넘어섰다. 한국 최다 금메달리스트 올림피언이 됐다. 간절했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도 처음 손에 쥐었다. 김우진은 2016 리우부터 이번 대회까지 3연속 올림픽 출전 중이다. 남자 단체 3연패(連覇)를 이끌었지만, 개인전에서는 번번이 미끄러졌다. 2016 리우에서는 개인전 32강, 2020 도쿄에서는 개인전 8강에서 탈락했다.

김우진은 지난 두 대회 단체전에서 1번 사수로 나왔다. 화살을 빨리 쏘는 김우진이 제한 시간을 적게 쓰기 때문에 뒷사수들에게 더 여유를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경기 승패를 가르는 역할인 마지막 사수로는 나서지 않았는데, 이 탓에 승부를 결정 짓는 능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따라왔다. 개인전에서도 부진한 이유라는 지적도 있었다. 김우진은 이번 파리 대회에서는 보란 듯이 마지막 사수로 나서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개인전에서도 위기를 스스로 헤쳐 나왔다. 대표팀 동료 이우석(27·코오롱인더)과 4강전에서 세트 승점 3-5로 밀렸으나, 5세트에서 29점을 쏘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슛오프에서 10점으로 승리하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이우석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6대0으로 깔끔하게 승리하면서 금 1개, 동 1개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고교 신궁’이라고 불렸으나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던 이우석의 ‘한풀이 무대’였다. 이우석은 “힘든 날도 많았지만 파리에서 빛날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날 여자 개인전 결승에선 임시현(21·한국체대)이 남수현(19·순천시청)을 세트 승점 7대3으로 꺾고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전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을 석권한 임시현은 지난 대회 안산(23·광주은행)에 이어 한국 양궁 역사상 두번째 올림픽 ‘3관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