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인스키 정동현. /로이터 뉴스1

16일 오후 중국 옌칭 국립 알파인 스키 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알파인 스키 남자 회전 2차 시기. 두 번째 주자로 나선 한국의 정동현(34)은 고함을 ‘와!’ 하고 길게 지르고는 스키 폴(pole)을 땅에 짚고 힘차게 출발했다. 모든 기문을 빠트리지 않고 내려왔고, 50초84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잠시나마 단독 선두 자리를 지켰던 정동현은 다섯 번째로 나선 마테이 비도비치(크로아티아)가 50초79로 본인의 기록을 깨자 박수 치며 그를 축하해줬다. 그리고 본인이 내려온 설산을 잠시 지긋이 쳐다봤다.

한국 알파인 스키 간판인 정동현의 네 번째 올림픽 마무리였다. 정동현은 지난 13일 대회전 1차 시기에서 경로를 이탈하며 실격했다. 당시 폭설로 인해 1차 시기에 나선 89명의 선수 중 35명이 실격했을 정도로 경기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날 본인의 주종목인 회전마저 실격하면 허망할 뻔했는데, 1, 2차 시기 모두 레이스를 마치면서 합계 1분47초69로 21위에 올랐다. 허승욱(은퇴)이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같은 종목에서 달성한 21위와 함께 한국 타이 기록을 세웠다.

16일까지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목에 건 메달은 전부 빙상이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메달이 나왔다. 성적만큼 관심도 많이 받았다. 반면 알파인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등 설상에서도 묵묵히 올림픽 무대에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비인기 종목이지만, 언젠가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크로스컨트리 이채원. /장련성 기자

여섯 번째 올림픽에 나선 ‘철녀’ 크로스컨트리 이채원(41)은 이번 대회 두 종목에 나서서 98명 중 75위(클래식 10㎞), 98명 중 61위(스키애슬론 15㎞)로 완주에 성공했다. 그는 “감기에 걸려 독감 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도 낫지 않아 힘들었다”며 “몸 상태 때문에 아쉬움도 남지만, 최선을 다해 뛰어서 후회는 없다”고 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를 시작으로 베이징까지 올림픽 무대를 연속 여섯 번 밟았다. 그가 2014년 소치 대회 30㎞ 프리스타일에서 기록한 33위는 한국 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역사상 최고 성적이다.

노르딕 복합 박제언. /연합뉴스

한국 설상 역사상 유일한 노르딕 복합 선수인 박제언도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지난해 코치도 없이 혼자 유럽에서 전지훈련을 다니며 기량을 쌓고, 이번 올림픽에 나서 노멀힐·10㎞에서 44명 중 42위, 라지힐·10㎞에서 48명 중 44위에 들었다. 그는 “나의 경험이 나중에 한국 노르딕복합 올림픽 메달이 될 거라 믿는다”고 했다. 여자 알파인 스키 김소희(26)는 대회전 33위에 올라 한국 올림픽 여자 알파인 스키 최고 순위 타이 기록을 세웠다. 1월 말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이 성사된 김소희여서 기쁨이 더 했다.

설상 불모지인 한국에 올림픽을 통해 본인 종목을 알리고 싶어한 선수들이 많았다. 지난해 10월 무릎 인대가 파열되고도 수술받지 않은 채 올림픽에 나선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이나윤(19·22명 중 14위)은 “한국에도 스노보드 올림픽 선수가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고, 어느 정도 보여 드린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30㎞ 스키애슬론 70명 중 62위에 자리한 크로스컨트리 김민우(24) 역시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보겠다. 비인기 종목인 크로스컨트리 스키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는 글을 본인 소셜 미디어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