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시즌 첫 승 스케치

“그 친구, 이제 돌아온 것 같다.” 한 때 까칠했던 감독의 평가다.

찰리 몬토요는 21일(한국시간) 첫 승 투수에 대해 몇 가지 좋은 얘기를 남겼다. “커맨드가 잘 이뤄졌다. 변화구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했다. 패스트볼이 90~91마일로 회복된 것도 좋았다. 덕분에 상대 타자를 공략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물론 칭찬만 남긴 것은 아니다. 꼭 한마디를 걸고 넘어간다. “승리에는 수비의 역할도 컸다. 디펜스는 우리의 장점 중 하나다.”

반박은 어렵다. 2루타를 5개나 맞았다. 거의 매 이닝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바람에 안도한 적도 몇 차례다. 그만큼 가슴 졸인 게임이었다. 개막 후 두 달 가까이 지나 얻은 1승의 소회다. 6이닝 6피안타 무실점. 탈삼진 3개에 볼넷은 0였다. 최고 구속은 92.9마일(150㎞)를 찍었다.

애타는 상황은 중반까지 이어졌다. 득점 지원이 막힌 탓이다. 상대 선발 루이스 카스티요에게 4회까지 꼼짝 못했다. 때문에 팽팽한 접전이 계속됐다. 수비 때는 위기에 몰리고, 공격은 안 풀리는 흐름이 계속됐다.

막힌 혈(穴)이 뚫린 건 5회 말이다. 1사 후. 브래들리 짐머의 2루타에 이어 조지 스프링어가 중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곧바로 보 비?의 2루타가 터졌다. 추가점으로 2-0의 리드를 잡았다.

모처럼 활발한 공격이다. 관중석도, 벤치도. 분위기가 타오른다. 갈채가 쏟아지고, 환호가 터진다. 나인들이 몰려와 하이파이브 파티가 열린다. 적시타의 주인공은 동료들에게 무용담을 자랑하기 바쁘다.

“96마일짜리 빠른 공인데 조금 몰렸어. 약간 먹힌 것 같은데 코스가 좋아서 안타가 됐지.” “투수가 1루에 신경을 안 쓰더라구. 카운트 1-2에서 그냥 스타트 해버렸지. 동시에 2루타가 나온 거야. 덕분에 편하게 홈까지 들어왔어.” 뭐, 그런 수다들일 것이다.

모두가 흥겨운 와중이다. 유독 한 명의 시선만 다르다. 왼쪽 팔과 어깨에 점퍼를 두른 채. 벤치 맨 뒷줄에 앉아 그라운드를 응시한다. 떠들썩한 주변은 아랑곳없다. 오로지 혼자만의 평정과 집중이다.

말라버린 득점 지원, 힘겨운 접전 상황, 어려웠던 선취점, 지켜야할 긴박함. 그런 건 이미 철저한 조기 교육으로 마스터했다. 오랜 시간, 터득한 경지다. 일희일비 않는다. 평정심을 지킨다. 소년 가장 시절부터 이어진 보살(菩薩)의 업(業)이다.

하지만 무장해제의 순간이 있다. 무겁고 긴 수행이 끝나는 시간이다. 6회 초, 2사 1루의 마지막 위기를 돌파했다. 카일 파머를 좌익수 직선타로 잡아냈다. 2-0의 우세를 유지하며 배당된 업무를 무사히 마쳤다. 이제 덕아웃은 그의 공간이다. 자신도 축하의 주인공이 된다. 나인들과 손을 잡고, 수고의 포옹을 이어간다.

그리고.

시선은 먼 곳을 향한다. 관중석 한 켠이다. 손을 흔들며 가장 평화로운 표정이 된다. 화답이다. 고사리 같은 양 손이 보내는 응원을 향한 아빠 미소다.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