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주기 올림픽이 벌어진 해. 2024년에도 어김없이 스포츠 명장면들이 연출됐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오타니, 만 17세에 세계 축구계에 수퍼노바(초신성) 등장을 알린 야말, 세계 테니스계를 지난 20여 년간 3등분한 ‘흙신’ 나달의 작별인사... 수많았던 뭉클한 순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5개를 추렸다.

그래픽=박상훈

◇오타니는 야구의 신(神)일까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는 올 시즌 50(홈런)-50(도루)을 달성했다. 120여 년 MLB(미 프로야구) 역사에 새로운 기록. 오타니 나이나 투타 겸업을 다시 한다는 전제를 대입하면 다시 나오기 어려운 기록으로 꼽힌다. 그 기록 달성 순간도 영화 같았다. 지난 9월 19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오타니는 48홈런 49도루를 지닌 채 경기에 나섰다. 첫 타석 2루타로 나가 3루를 훔쳤다. 50도루. 남은 건 홈런 2개. 6회 투런 홈런, 이어 7회 또다시 투런 홈런으로 50홈런마저 채웠다. 그것만으론 축하 잔치를 장식하긴 부족해서였을까. 9회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대기록 달성 경기를 화려한 숫자(6안타 10타점 4득점 2도루)로 마감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4홈런 59도루. 대미(大尾)는 다저스 월드시리즈 우승. 그가 미국 진출 후 꿈꿨던 불가능한 상상을 이룬 한 해였다. 결혼은 덤이다.

◇17세 야말은 메시를 넘어설까

지난여름 유럽 대륙을 뜨겁게 달궜던 2024 유럽축구선수권(유로)은 라민 야말이란 혜성이 축구 대륙을 침공하며 새로운 지배종이란 걸 알린 대회였다. 야말은 스페인 유니폼을 입고 6월 15일 크로아티아와 조별 리그 B조 1차전에 나서며 유로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16세 338일)을 세웠다. 7월 9일엔 유로 4강 프랑스전에 나와 0-1로 뒤진 전반 21분 그림 같이 감아찬 왼발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역대 유로 대회 최연소 골. 스페인은 거함 프랑스를 2대1로 침몰시키고 결승에 올랐다. 17세 생일이 지난 뒤 맞은 결승전 잉글랜드와 경기에서도 송곳 패스로 동료 니코 윌리엄스의 선제골을 도왔다. 스페인의 2대1 승리로 야말은 우승컵과 함께 대회 도움 왕(4개)까기 손에 넣고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입에는 교정기를 낀 채였다.

◇여자의 한계를 넘어선 체븐게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마라톤. 여자 마라톤에선 ‘꿈의 기록’이라 여겨진 2시간 10분 벽이 올해 깨졌다. 케냐 출신 루스 체븐게티(30)는 10월 13일 열린 미국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 9분 56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세계기록을 새로 썼다. 종전 기록은 작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티지스트 아세파(에티오피아)가 작성한 2시간 11분 53초였는데 이를 2분 가까이 앞당겼다. 체븐게티는 42.195㎞를 100m당 18.48초에 주파했다. 2위 수투메 케베데를 7분 이상 앞서는 압도적 질주였다. 이 배후엔 나이키·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들이 최근 개발한 고기능성 ‘수퍼 슈즈’가 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한계를 다시 설정하는 셈이다.

◇”꿈을 좇았던 아이” 나달의 작별

붉은 테니스 코트를 보면 생각나는 이름, ‘흙신’ 라파엘 나달(38)이 라켓을 놓았다. 나달은 11월 19일 조국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2024 데이비스컵 8강전 첫 단식 경기에서 패한 뒤 은퇴 행사를 가졌다. 1만3000여 팬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작별 인사를 한 그는 “그저 꿈을 좇는 아이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꿈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 아이로 기억되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23년 정든 코트를 떠난 나달은 테니스 메이저 대회 단식을 22회 우승했다. 강한 체력과 빠른 발,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앞세운 그는 프랑스 오픈에서만 14번 정상에 올라 ‘클레이 코트의 황제’라 불렸다. 로저 페더러(43·스위스)에 이어 나달이 은퇴하면서 세계 테니스 황금기를 이끈 ‘빅3′ 중에선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만 남았다.

◇복싱계를 뒤흔든 XY 염색체

8월1일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66㎏급 16강전. 알젤라 카리니(26·이탈리아)는 경기 시작 1분도 되지 않아 경기를 포기하며 울었다. XY 염색체(남성 염색체)를 가지고 있어 출전 자체에 논란이 컸던 이마네 칼리프(25·알제리)의 강펀치를 당해내지 못한 것. 카리니는 “이런 주먹은 처음 느껴봤다”고 했다. 칼리프는 8강부터 결승까지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칼리프 성별 논란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IBA(국제복싱연맹)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재정 불투명성과 편파 판정 등을 이유로 IOC에서 올림픽 퇴출 처분을 받은 IBA는 칼리프와 IOC를 비방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칼리프가 AP통신 선정 올해의 여자 선수 3위로 뽑혀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