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니크 신네르(23·192cm)가 US 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올해 호주 오픈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대회 타이틀이다. 이탈리아 남자 선수로는 첫 US 오픈 챔피언이다. 신네르(세계 1위)는 결승전이 열린 9일 미국 뉴욕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미국의 테일러 프리츠(27·12위)를 세트 점수 3대0(6-3 6-4 7-5)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우승 트로피와 상금 360만달러(약 48억원)를 받았다. 이탈리아 선수가 US 오픈 단식 정상에 오른 건 여자부 플라비아 페네타가 2015년 처음이고, 남자부에서 신네르가 신기원을 열었다.
신네르는 이날 강력하면서 정교한 그라운드 스트로크와 끈질긴 수비로 프리츠를 제압했다. 범실도 21개에 그치며 프리츠(34개)보다 안정적인 플레이를 했다. 상대 전적은 2승 1패로 앞서 나갔다. 그는 “오늘 경기력에 만족한다. 가족과 팀, 나를 지원해 주는 모든 사람 덕분”이라고 말했다.
신네르는 이탈리아 북동부 스키 타운인 돌로미티에서 자랐다. 세 살 때 스키와 테니스를 시작했고, 이후 지역 유소년 축구팀에서도 뛰었다. 스키 선수로 가장 두각을 드러내다 13세부터 테니스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코트에서 그가 선보이는 뛰어난 균형 감각은 스키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마한 것이다.
프리츠는 미국 선수로는 2006년 앤디 로딕(준우승) 이후 18년 만에 이 대회 결승에 올랐다. 주 무기인 서브로 에이스 10개(신네르 6개)를 올렸을 뿐, 전반적으로 신네르에게 밀렸다. 프리츠는 3세트에 5-3까지 앞서다 4게임을 내리 내주면서 완패했다. 준우승 상금은 180만달러(약 24억원)다.
신네르는 대회 직전 도핑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3월 도핑 테스트를 하며 제출한 샘플에서 양성 반응을 두 번 보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 근육 강화 스테로이드 계열인 클로스테볼 성분이 나왔다고 한다. 신네르 측은 “물리치료사가 자신의 손에 난 상처를 치료하려고 트레이너가 구입한 스프레이 치료제를 뿌렸는데, 여기에 클로스테볼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물리치료사가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선수의 다리와 발을 마사지하는 과정에서 이 성분이 체내로 흡수됐다”고 주장했다. 이 소명이 받아들여졌고 출전 정지 등 후속 징계는 없었다. 선수 과실이나 부주의가 없었고, 검출된 약물량이 적었다는 게 이유였다. 다만 신네르가 3월 인디언 웰스 오픈에서 4강에 오르며 받은 상금과 랭킹포인트는 몰수됐다. 신네르는 문제를 일으킨 물리치료사와 트레이너를 해고하고 US 오픈에 참가했다.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세계 랭킹 1위라서 특혜를 받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신네르는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괜찮았다”고 말했다.
2018년 프로에 데뷔한 신네르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특히 하드코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시즌 초 호주 오픈, 지난달 신시내티 오픈과 이번 US 오픈까지 제패했다. 신네르는 올해 프랑스 오픈(클레이 코트)에선 4강, 윔블던(잔디 코트)에선 8강을 기록했다. 파리 올림픽은 편도선염 악화 때문에 불참했다.
올해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 우승은 21세인 스페인 카를로스 알카라스(3위)가 차지했다. 이로써 2024년 4대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20대 초반 신네르와 알카라스가 나눠 가졌다. 알카라스는 US 오픈에선 2회전을 넘지 못했다.
21세기 남자 테니스를 지배한 로저 페더러(스위스·은퇴), 라파엘 나달(스페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2002년 이후 22년 만에 메이저 우승자 명단에서 사라졌다. 신네르는 “새로운 챔피언들이 나오는 것은 테니스에 좋은 일이다. 적어도 올해는 내가 (이런 변화에) 포함돼 기쁘다”면서 “내년에도 분명 커다란 도전이 찾아올 것이다. 나도 더 발전하길 기대하고 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