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현(16·경기체고)이 24일 경북 경주시 일원에서 열린 코오롱 구간 마라톤 대회 결승선을 통과하며 검지를 드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선수들에게 ‘1학년 동생을 위해 우리 다 같이 힘내보자’고 말했어요. 다들 열심히 달려줘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앳된 얼굴의 고정현(16·경기체고)이 8.195km를 27분54초에 달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그는 검지를 높이 들어 1등을 의미하는 ‘1′을 만들어보였다. 그는 곧장 경기체고 이기송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고, 앞선 구간을 달린 선배와도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나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 인근에 마련된 매트에 누웠다. 이 감독은 “1학년 정현이를 중요한 마지막 6구간에 배치한 뒤, 선수들에게 ‘조금씩 더 힘을 내 동생이 1등으로 들어오도록 하자’ ‘서로를 위해 달리자’고 말했다. 이 승리는 우리 선수들이 하나 돼 만든 쾌거”라고 했다.

경기체고가 24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제38회 코오롱 구간 마라톤 대회’(조선일보·대한육상연맹·KBS·코오롱 공동 주최) 남고부에서 2시간16분03초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고등부에선 6명의 선수들이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를 나눠 달리고,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경기체고는 1구간(7.7km)을 양정고, 충남체고에 이어 3위로 마쳤으나 2구간(7.3km)을 달린 주장 김태훈(3학년)의 활약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선두를 유지해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체고가 이 대회에선 우승한 건 2003년 이후 19년 만이다. 통산 세 번째 우승. 김태훈은 경기 전 “2004년생인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승한 이후 아직 우승이 없다. 이번에 반드시 이기겠다”고 선전을 다짐했다. “동생을 위해 달리자”는 감독의 말에 부응하듯 그는 2위와의 격차를 벌리고도 구간 종료 지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이팅’도 쑥스러워하던 아이들, 이젠 감독 헹가래도 선뜻

이 감독은 올 3월 경기체고에 부임했다. 당시 선수들은 손을 맞대 ‘화이팅’을 외치는 것을 쑥스러워 할 정도였다. 이 감독은 “서로 손을 모아 함께 소리를 지르는 것 모두 자신감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감독의 지도 철학 아래 학생들은 차츰 손을 맞잡기 시작했다. 부끄러워하던 선수들은 이젠 서로 깊은 이야기도 터놓고 말하는 사이가 됐다. 고정현은 “형들에게 달리기 조언을 듣는 것은 물론, 운동 외적인 고민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승 이후 기념사진 촬영 시간. 함성이 일상이 된 선수들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와!”라고 외쳤다. 그리곤 이 감독을 번쩍 들어 헹가래 쳤다. 감독은 “뒤에 조심해”라며 웃었다.

경기체고 선수 및 코치진이 24일 코오롱 구간 마라톤 대회 남고부 우승 후 함께 소리치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경기체고 선수들은 오전 5시쯤 기상해 일과를 시작한다. 일주일에 1회쯤은 도로 훈련을 나가는데, 그럴 때는 전날 일찍 잠든 후 훈련 당일 4시 30분에 일어난다. 자동차 등 위험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달리기 위해서다. 학교가 수원 시내에 있어 도로 훈련이 여의치 않던 상황에서, 이 감독 등 코치진은 나흘에 걸쳐 학교 근처를 돌았다. 새벽에 뛰기 좋은 최적의 코스를 찾아낸 이후 선수들은 코치진의 에스코트 하에 꾸준히 학교 밖 달리기를 한다. 이 감독은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는 잡는 법”이라고 했다.

대회 우승을 기뻐하는 것도 잠시뿐. 그들은 곧장 울산으로 향했다. 오는 10월 열리는 전국체전 답사를 위해서다. 다음 대회를 위해 경기체고 선수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번 대회 여고부에선 서울체고가 2시간52분35초로 우승하며 직전 2019년 대회에 이어 2연패 및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4명이 15km를 나눠 달린 중등부 우승은 남자부 대구체중(51분29초), 여자부 부천여중(59분02초)이 차지했다. 4구간(4km)을 달린 서울체중의 박진현(3학년)은 11분 53초로 구간 신기록을 세웠다. 앞서 오성일(배문중)이 세운 12분02초보다 9초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