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보>(1~19)=김명훈(25)은 현재 9단이지만 이 대국 당시 단위에 맞춰 8단으로 표기했다. ‘위기 9품’ 식 분류에 따르면 9단은 입신(入神), 8단은 좌조(坐照)다. 각각 ‘신의 경지에 들었다’ ‘앉아서도 훤히 내다본다’는 의미다. 2014년 수졸(守拙·초단의 별칭)로 시작해 8년 만에 신(神)의 경지에 올랐으니 놀라운 스피드다. 단위에도 성장 속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현대 바둑의 초반은 수읽기 아닌 선택의 시간이다. 정석이라고 불리는 ‘매뉴얼’이 워낙 잘 정리돼 있어 어떤 길로 접어들지 결정만 하면 된다. 오늘도 번개처럼 몇 수가 놓이더니 좌상귀 6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다. 위로 걸쳐 참고도의 변화도 가능하다. 김명훈은 아래로 걸쳤고, 7을 기다려 8의 귀굳힘을 택했다. 초반의 한 수, 한 수가 그 바둑의 얼개를 결정한다.
9의 침입은 누구나 예상했던 수. 10년 전만 해도 이 수로는 12로 걸치는 바둑이 많았었다. 13 때 백은 17로 젖히는 복잡한 변화도 있지만 간명을 선택했다. 18은 절대점. 흑은 19로 뛰어들어 하변 백세 폭파에 나선다. 좌우의 벌림을 맞보는 적당한 간격이다. 백이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디서 전단(戰端)을 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