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한 조간신문의 20일 기사 제목은 ‘금메달 2개 사냥에 나선다’였다. ‘역대 최고의 남자 허들 선수’로 꼽히는 카르스텐 바르홀름(26)과 ‘현역 중거리 최강자’라 불리는 야코프 잉게브리그스텐(22·이상 노르웨이)이 이날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의 2022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나란히 주종목에 출전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변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제목이 현실로 이뤄지진 않았다.
◇반전의 ‘신성’ 도스 산토스
알리송 도스 산토스(22·브라질)는 이날 남자 400m 허들 결선에서 46초29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케빈 영(미국)이 1993년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세운 47초18을 0.89초 당긴 대회 신기록이다. 도스 산토스는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이 종목 ‘신성’으로 떠올랐는데, 약 1년 만에 세계선수권에서 최강자인 바르홀름을 꺾고 정상에 오르며 본인의 미래를 밝혔다.
수년간 남자 400m 허들은 바르홀름의 독무대였다. 그는 2017년 런던, 2019년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2연패(連覇)를 달성했다.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도 본인의 남자 400m 허들 세계 기록(46초70)을 0.8초가량 앞당긴 45초94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그 뒤 바르홀름은 허벅지 부상 후유증으로 올해 단 한 번도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바르홀름은 총 10개 중 7번째 허들까지는 선두를 달렸지만, 8번째 허들에서 도스 산토스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도스 산토스는 라이 벤저민(25·미국)과 경쟁하다 마지막 허들을 넘고 치고 나가면서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도스 산토스는 그 뒤로도 활짝 웃으며 계속 달렸다. 그는 “정말 행복한 순간”이라며 “나는 더 빨리 뛸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벤저민은 2위(46초89)로 은메달을, 바르홀름은 힘이 빠진 듯 7위(48초42)에 그쳤다.
◇”제 아들이 세계 챔피언”
남자 1500m에서도 이변이 벌어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이크 와이트먼(28·영국)이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다. 지금껏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이 2019년 도하 세계선수권에서 거둔 5위에 불과했던 선수였다.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노르웨이의 잉게브리그스텐은 1300m를 지날 때까지 선두를 지켰다. 그런데 그때 와이트먼이 뒤에서 불쑥 치고 나오더니 무언가에 홀린 듯 내달렸다. 와이트먼은 잉게브리그스텐의 추격을 뿌리치고 첫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2위로 들어온 잉게브리그스텐이 쪼그려 앉은 그의 등을 토닥이며 축하했다.
와이트먼이 승리하자 경기장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저 선수는 제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세계챔피언입니다.” 그의 아버지 저프 와이트먼의 음성이었다. 와이트먼은 도쿄올림픽에 이어 이번 대회에도 경기장 아나운서를 맡았다. 아버지 와이트먼의 목소리에선 평정을 유지하려는 가운데 군데군데 큰 기쁨이 새어나왔다. 그 마음을 읽은 듯 관중은 아버지를 향해서도 큰 박수를 보냈다.
와이트먼은 “꿈이 이뤄졌는데도 믿기질 않는다. 며칠, 아니 몇 달은 지나야 이게 실제라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회 전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남자 1500m 시상식 30분 뒤로 예약해뒀다고 한다. 시상식은 안중에 없었을 만큼 우승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를 뒤늦게 안 세계육상연맹이 급하게 와이트먼의 비행기 시간을 바꿔줬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