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큰 관심 속에 거행된 여자바둑리그 부안 대 여수전 1지명자 대결. 06년생인 부안 김효영(오른쪽)이 여수 김은지(97년생)를 꺾어 팀 승리를 결정했다. /한국기원

한국 여자 바둑에 ‘0607 돌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2006년생 정유진 이슬주 김효영, 그리고 2007년생 김은지 김민서가 그 주인공들이다. 국내 프로 기사 407명 중 최연소 10위 이내인 이 15~16세 소녀 투사들은 두꺼운 기성(旣成)의 벽을 빠르게 허물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바둑계에서 벌어진 가장 충격적 장면은 정유진(16)의 최정(26) 저격 사건이었다. 6월 열린 기업은행배서 프로 4년 차 초년생이 세계 톱스타를 메다꽂은 것. 당시 국내 랭킹은 최정이 103개월째 1위, 정유진은 고작 28위였다.

정유진은 지난 연말엔 난설헌배에서 준우승했는데 결승행 과정에서 오유진 김채영을 연파했다. 국내 여자 최정상권 기사 3명 모두에게 한 방씩 먹인 셈. 정유진은 기업은행배 8강전서 신흥 강자 이영주마저 따돌리고 4강에 진출, 오는 13일 김은지(15)와 결승행 티켓을 다툰다.

김은지는 현재 여자 랭킹 4위로 ‘0607 5총사’ 중 가장 높다. 지난달 말 100승 고지에 가장 먼저 오른 기사도 김은지다. 어릴 때 TV에서 소개되는 등 천재 소녀의 길을 걸어온 그는 YK건기배, 용성전 등 종합 기전서도 남성 강자들과 대등히 맞서고 있다. 정유진 상대 전적은 2승 무패.

김효영(16)은 올해 2월 열린 메디힐 여자최강전 초대 우승자다. 2000년 이후 출생자만 겨룬 대회지만 성인 무대 못지않게 치열했다. 김효영은 결승서 김민서를 제치고 입단 10개월 만에 첫 타이틀을 꿰찼다. 입단 전 여자아마국수전 2연패(連覇) 관록의 김민서(15)는 프로 첫 결승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당시 국내 최연소 기사란 점 때문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이슬주(16)는 올해 국가 대항전인 호반배 국가대표로 선발돼 모든 여자 기사의 부러움을 샀다. 김미리 김민서 김선빈을 연거푸 꺾고 태극 마크를 따낸 것. 선봉장을 맡아 출전한 본선에서 비록 승점을 챙기는 데는 실패했지만 ‘16세 국가대표’란 신화를 남겼다.

최연소급 소녀들의 놀라운 활약에 여자바둑리그 드래프트 시장이 즉시 반응했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김효영 김민서가 부안 1·2자명자로, 김은지와 이슬주는 여수 1·2지명으로 호명되는 파격이 이뤄진 것. 김은지는 여자리그 사상 최연소 1지명자(주장)가 됐다.

이들 간 경쟁 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치열하다. “살벌했다. 냉랭한 표정으로 서로 눈길 한번 안 주더라.” 최근 여자리그 부안 김효영 대 여수 김은지의 1지명 대결 중계를 맡았던 바둑TV 김율구 PD의 말이다. 리그 전적 3패 만에 첫 승을 올린 김효영은 눈물이 쏟아질 듯한 표정으로 “그간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둘 간 상대 전적은 2대2가 됐다.

5명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다. 김민서와 이슬주는 입단 동기이자 동문이다. 김은지 포함 3명이 장수영 도장을 함께 다녔다. 정유진·김효영은 한종진 도장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 현재 정유진은 국가대표팀, 김은지와 김민서는 청소년 대표팀 소속이다. 랭킹은 김은지(4위), 김민서(14위), 정유진(23위), 김효영(25위), 이슬주(26위) 순인데 매달 변동 폭이 크다.

대표팀 박정상 여자 전담 코치는 “이슬주는 기본기, 김효영은 공격력이 좋다. 정유진과 김은지는 전투력이 강하고 김민서는 감각이 돋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인재들이 이처럼 동시에 쏟아져 나와 돌아가면서 주목받는 건 처음이다. 라이벌 의식 속에서 함께 쑥쑥 크고 있어 미래가 밝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