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보>(121~141)=프로기사의 성쇠(盛衰)는 기전 성적표에서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조한승은 LG배 초창기인 7~9회 대회서 3년 연속 4강을 밟은 스타였다. 11회 대회를 포함해 준결승에 4번이나 올랐다. 18회 대회를 끝으로 LG배 대진표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무려 9년 만인 올해 다시 본선 문을 노크하고 있다. 8전 9기를 향한 도전이다.

백이 △로 한 칸 뛰자 우변 흑세가 단숨에 위축된 모습. 누가 보아도 백의 우세다. 하지만 이 바둑은 여기서부터 이상 기류에 싸이다 역전된다. 일단 124는 참고 1도가 최선이지만 두텁게 정리하겠다는 의미. 126이 방심의 한 수였다. 참고 2도 1~8을 선수해 A로 끊는 노림을 남긴 뒤 9에 두어야 했다. 127, 129가 기민해 여기서 흑이 2집 가량 추격했다.

130은 일종의 역끝내기. 흑은 135의 급소를 차지해 140까지 선수(先手)로 외벽을 쌓는 데 성공했다. 남은 과제는 중앙이 어떤 식으로 정비되느냐 하는 것. 섣불리 손댔다간 안 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조한승은 일단 계산이 확실한 141의 끝내기부터 서둘며 동정을 살핀다. 우세한 바둑을 지키기가 불리한 형세를 뒤집기보다 더 어렵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