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보>(29~37)=두 대국자 모두 작심한 듯 장고를 거듭하다 보니 초반 진행이 유례가 드물 만큼 황소걸음이다. 장고엔 대국자의 신중한 마음가짐과 자신감도 함께 투영돼 있다. 종반 난소에서 빗발 같은 초읽기를 버텨낼 자신이 없으면 시간을 물쓰듯 할 수 없기 때문. 이 바둑이 막판 엄청난 회오리 속에 승부가 결정된 것도 시간 관리 성패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기자절야(棋者切也). 백이 △로 끊은 것은 당연하다. 흑도 29 단수가 옳은 방향이며 이하 33까지 필연의 진행. 누가 두어도 이렇게 될 외길 수순이건만 15분이나 소요됐다. 쌍방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안 건넌다’는 식의 신중 모드다. 초반에 주도권을 내주고 질질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가 착점 하나하나에 녹아있다.
34는 어땠을까. 35를 강요하고 36으로 빠져 자체적으론 훌륭한 자세를 갖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후수라는 점. 우하귀를 선수로 안정한 흑이 먼저 37로 준동한 수가 위협적이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수가 참고도 1로 끊는 맥점. 그랬으면 4까지 넘음을 방지한 뒤 먼저 5로 손을 돌릴 수 있었다(흑이 당장 A로 움직이는 것은 백 B~D의 수순으로 잘 안 된다). 백이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