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20)의 고레이팅(Go Rating) 점수가 3800점에 접근했다. 21일 현재 3799점(소수점 이하 생략)이다. 신진서 개인은 물론이고, 1980년 이후 어떤 기사도 밟아보지 못한 최고 점수다.
고레이팅은 세계 바둑 랭킹을 매일 업데이트하는 전문 웹사이트다. 프랑스인 인공지능 학자 겸 사업가 레미 쿨롬(46) 박사가 운영하는 개인 매체지만 엘로(Elo) 기법을 근간으로 한 객관적 계산법으로 운영해 국제 바둑계의 의존도가 매우 높다.
신진서(3799점)와 2위 커제(3712점)의 차이는 무려 87점에 달한다. 3위 박정환(3686점)에겐 113점 앞섰다. 점수 상승 속도 또한 무시무시하다. 2016년 11월 3600점을 돌파한 지 1년 10개월 만에 3700점을 넘은 데 이어 다시 2년 만에 3800점 등정이 눈앞이다.
이 같은 상승 속도는 커제가 3600점대에서 6년을 머물다 지난 3월에야 3700점을 돌파한 것과 대비된다. 박정환은 2013년 6월 3600점 등정 후 아직 3700고지에 올라보지 못했다. 이 최정상 3인방 외에 3600점대를 경험한 기사도 중국 구쯔하오, 양딩신 등 세계적으로 4명에 불과하다.
과거 1인자들의 최고점과 비교해도 신진서의 현재 점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난다. 조치훈이 3402점(86년 5월), 조훈현이 3462점(89년 9월)이고 이창호는 3569점(95년 9월)이 최고점이었다. 이세돌은 2010년 5월 개인 최고인 3583점을 찍었지만 3600점대 진입엔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들의 점수를 단순 비교해 신구(新舊) 간 실력 차이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 ‘바두기’ 제작자인 이주영 박사(고등과학원 교수)는 “상대평가 방식인 엘로는 대국 수가 많아질수록 1위 점수가 인플레되는 문제점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AI가 인간계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었고, 그것이 시대별 1인자 점수 상승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진서가 AI들 틈에 끼어든다면 어디쯤에 설까. 알파고 시리즈 기획사 딥 마인드에 따르면 첫 작품인 ‘알파고 판’의 엘로 점수는 3144점, 2016년 이세돌과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알파고 리’는 3739점이었다. 신진서(3799점)는 이 초기 두 알파고 버전을 이미 뛰어넘은 셈이다.
하지만 AI는 광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7년 프로 기사 60명을 상대로 전승한 뒤 커제마저 완파했던 알파고 마스터(4858점), 규칙만 배운 후 자가 학습으로 알파고 마스터를 89대11로 일축한 알파고 제로(5185점)와의 격차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알파고 ‘은퇴’ 이후 등장한 줴이, 골락시, 카타고, 바두기 등 특급 AI들의 현 엘로 점수도 5000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남은 의문은 신진서의 인류 최초 4000점 돌파 여부다. 이주영 박사는 “엘로 시스템 규정으로 계산할 때 신진서가 4000점에 오르려면 현재 2위인 커제에게 84% 승률을 올리는 수준의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신진서의 커제 상대 통산 전적이 3승 8패인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신진서는 특급 AI들과의 ‘착점 일치율’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다. 특히 추상적 공간인 중원 경영에서 AI와 가장 가까운 수법을 구사하고, 이를 습득하는 데도 다른 누구보다 적극적이란 평을 듣는다. 지금의 눈부신 페이스라면 신진서의 고레이팅 4000점은 단순히 꿈만은 아니란 얘기다.